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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젠 언론사찰 의혹까지 받는 공수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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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출범 당시 김 처장은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수사”를 다짐했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해 있다. 출범 당시 김 처장은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수사”를 다짐했었다. 장진영 기자

비판적 보도 언론사 기자 통신 조회

통신 비밀, 언론 자유 심각한 위협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번엔 언론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공수처가 수사를 이유로 통화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앙일보 등 특정 언론사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앞서 대검찰청 감찰부가 전·현직 대검 대변인이 사용한 공용 휴대전화를 영장 없이 압수하고, 뒤이어 공수처가 대검 감찰부를 압수수색해 포렌식 자료를 확보한 일도 있었다. 대변인 공용 휴대전화는 주요 통화 대상이 검찰과 공수처 등을 취재하는 법조팀 기자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됐다. 여기에 더해 공수처가 직접 나서 기자들의 통화를 파악한 셈이다. 공수처가 수사 대상도 아닌 언론인을 상대로 집요하게 사찰을 시도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통신조회 대상은 공수처와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많이 해 온 언론사다.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동문으로 이 정부 최고의 검찰 실세인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공수처 조사 당시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문화일보는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왔다. 공수처가 해당 언론사 기자들의 통화를 들여다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판 보도에 대한 표적 사찰이자 보복 수사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언론은 아무런 강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정부와 권력의 비리를 찾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의 일탈을 언론에 알리는 내부고발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독재자는 언론과 제보자를 겁박한다. 언론통폐합을 시행한 전두환 정권이 대표적이다. 수사기관이 기자의 활동을 뒷조사한 징후가 잇따라 폭로되는 상황은 심각하다. 법조계에서 “지금이 유신 시대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공수처는 더 늦기 전에 언론 사찰 의혹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 어느 언론사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으며 어떤 목적으로 그 같은 일을 벌였는지 설명해야 한다. 공수처는 “적법 절차였다”고 반박하면서도 수사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와 통신 비밀의 침해가 훨씬 위중한 사안이다.

공수처는 출범 직후 김진욱 처장의 관용차로 이 고검장을 모셔 비난을 자초한 이후 최근의 불법 압수수색 파문까지 지난 1년간 하루도 국민을 흡족하게 해 준 기억이 없다. 이제라도 냉정을 되찾고 공수처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헌법책을 꺼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21조와 통신의 비밀을 규정한 18조부터 다시 공부하라. 왜 검찰이나 경찰의 유능한 수사 인력이 공수처 파견에 손사래를 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운국 차장의 고백처럼 실력도, 경험도 모자란 ‘아마추어’라면 속도가 늦더라도 최소한 헌법과 법률만큼은 어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