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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병상 부족, 방역패스 먹통…정치방역이 재앙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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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병상 줄이고 부스터샷 늦어져 피해 키워

방역당국은 청와대 눈치 보고, 준비 부족

어제 코로나19 위중증 환자(906명)와 사망자(94명)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확진자도 월요일 기준으로 가장 많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또한 계속 확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 확진자가 1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비했다”(11월 21일)지만 무엇을 대비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는 오히려 지난달 1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작과 함께 긴장의 끈을 놓은 것처럼 보인다. 10월 8일 생활치료센터엔 2만여 개의 병상이 있었는데, 11월 28일 1만6934병상으로 되레 줄었다. 그 대신 재택치료 대상을 79세 미만 무증상·경증 환자로 확대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 위험도가 낮을 거란 이유였다.

하지만 확진자 증가는 위드 코로나 시작 전부터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위중증 환자 관리가 제일 중요한 목표였는데, 확보된 전국의 중환자 병상은 1288개에 불과하다. 어제 기준 1053개(81.8%)를 가동 중이며, 병상 대기자는 1481명에 달한다. 한 달여간(10월 31일~12월 4일) 병상을 기다리다 숨진 환자만 29명이다.

방역패스 먹통 사태도 부실한 준비가 원인이다. 본격 시행 첫날(13일) 시스템이 멎어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급기야 보건당국은 방역패스 적용을 하루 면제키로 했다. 어제도 일부 시간대 먹통이 계속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백신 예약 초기 여러 번 겪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준비 부족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 가운데 보건당국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정치방역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질병관리청은 적시에 방역 강화를 주장했지만 “청와대가 ‘후퇴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반대”(여권 고위 관계자)하면서 때를 놓쳤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후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연일 5000명대 확진자가 나오고 첫 7000명대(8일) 돌파 직전에야 문 대통령은 “방역의 벽을 다시 높인다”(7일)고 입장을 바꿨다. 적기에 대응할 기회를 놓치면서 확진자가 폭증했고, 의료 역량이 한계에 부닥쳐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물론 이제 다시 과거처럼 봉쇄에 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긴 어렵다. 자영업자의 어려움과 국민의 피로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에 따라 중환자 병상을 미리 확보하고, 급격히 떨어지는 고령층의 백신 효과를 고려해 부스터샷 접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등 과학적 방역에 집중했다면 위기는 덜했을 것이다.

팬데믹 대응은 정치가 아닌 과학이어야 한다. 위기 때마다 해법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부가 더욱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방역 대응이 대통령의 고집에 좌우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