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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올림픽 보이콧 검토 않는다”는 대통령의 섣부른 발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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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캔버라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캔버라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전략적 모호성 없이 외교 카드 드러내  

자칫 한·미, 한·중 관계 모두 꼬일 수도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은 섣부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은 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보이콧 동참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었는데, 문 대통령이 보이콧 불참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입장은 중국 인권 문제를 이유로 보이콧을 결정한 미국의 방침과 다르다.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 이 명분에 동의해 선수단만 파견하고 외교 사절을 보내지 않는 보이콧에 동참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측 요청이 없었다지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민주주의는 상태(state)가 아니라 행동(act)”이라며 함께 나가자고 했다. 개막 전날 미 하원이 ‘위구르족 강제노동 방지 법안’을 통과시킨 데에서 보듯 중국 압박에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 정부로선 외교적 보이콧이 곤혹스럽다. 그럴수록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실리적인 대처가 필요한데, 문 대통령 스스로 외교적 카드를 일찍 보여준 셈이다. 미국과의 동맹과 중국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일본 정부의 대처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일본은 정부 고위층의 명시적인 입장 발표는 없고,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장관 출신 의원을 파견키로 했다고 언론이 전할 뿐이다. 보이콧에 응하면서 중국 체면도 세워주는 절충점이다.

암초에 부닥친 종전선언에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려고 문 대통령이 보이콧 불참을 시사한 것이라면 더 적절치 않다. 문 대통령은 어제 회견에서 종전선언 구상에 대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모두 원론적인,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면서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공식 입장은 “시기·순서·조건에 관해 한국과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였다. 미국으로선 비핵화가 우선 조건이지만 북한은 전술핵무기 개발까지 공언하고 있다. 미 현지에선 ‘한·미 간 종전선언 협의 결렬’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만 피하자는 분위기도 포착된다고 한다.

임기 말인 문 대통령은 대북 해법과 관련해 무리한 성과를 내려 해선 곤란하다. 대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인 만큼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정리해 나가야 한다. 올림픽 보이콧 문제도 설령 동참하지 않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양해를 구할 수 있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중국이 기대를 키웠다가 채워지지 않으면 서운함만 커진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최종 결정까지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