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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구하기', 중국이 주시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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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지난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화면)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화면)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시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군사력 증강이 전쟁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국경 집결 #"내년 초 전쟁 일어날수도" 긴장 #"러시아 도발, 중국 담대하게 해" #美 반응 따라 中-대만 관계 영향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이 대규모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냉전 종식 이후 최고조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미·중 갈등과 대만 문제, 순조롭지 않은 이란 핵 협상, 돌파구 못 찾는 북핵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바이든 행정부의 숙제로 더해졌다.

미 정보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군대를 대규모로 이동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남·북부 접경지역에 러시아군 10만 명을 배치했다.

WP는 러시아가 이르면 내년 초 약 17만5000명 병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공격을 준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병력 35만 명을 국경에 집결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확한 의도는 불분명하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반대하고 있다. 자국과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면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 이동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논의를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무력(武力)시위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논의에 불을 댕긴 나라는 미국이다. 200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촉진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안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한다”며 반대했다. 타협 끝에 그해 정상선언문은 구체적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채 ‘가입’만을 약속했다.

또 다른 분석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는 관측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께 러시아가 비슷한 전력 증강을 시도하자 6월 제네바에서 바이든과 푸틴의 첫 미·러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번에 또 집결하자 지난주 정상 간 화상 통화가 마련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푸틴 대통령이 무력시위를 시도할 때마다 미국과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우크라이나 특사를 지낸 커트 볼커는 “푸틴이 머릿속에 그리는 특정한 최종 상태는 없을 것”이라면서 “권력 지위를 창출하고, 기회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길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지난 10일 로스토프 지역에 있는 카다모프스키 사격장에서 보병전투차량(BMP-3)을 동원해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지난 10일 로스토프 지역에 있는 카다모프스키 사격장에서 보병전투차량(BMP-3)을 동원해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진퇴양난에 빠진 바이든 외교 

미국은 진퇴양난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은 군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 국민을 향해 전투병력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옵션은 “테이블에 올린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무력을 사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맞선다는 생각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나토 동맹국에 도덕적 의무와 법적 의무가 있지만, 그 의무는 우크라이나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심각한 경제 제재”를 경고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안보 지원 약속을 거듭 천명했다.

미국이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에 민감한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가 중국과 대만 관계로 치환될 수 있어서다.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러시아가 무력 사용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은 중국에 자신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워싱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패트릭 뷰캐넌 전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이코노미스트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더 가까운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자 유산으로 생각하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을 100년 만에 조국 품으로 돌려놓는 것을 그렇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 자극할 수도

WP는 “러시아가 러시아 영토로 간주하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경우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유사한 조치 역시 대담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나토와의 공조, 강력한 제재로 러시아의 의도를 꺾을 수 있을지에 중국이 주목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구하기’는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동진 공격으로부터 유럽 동맹을 방어하는 데 미국의 이익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문제는 2019~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가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 차남 헌터의 의혹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압력을 행사했다. 대러 방어를 위해 마땅히 지원해야 할 군사원조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미 정계와 의회가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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