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바이든이 보낸 얀센 백신 101만 회분, 청구서는?

중앙일보

입력 2021.06.07 00:36

업데이트 2021.06.0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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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얀센 백신 101만 명 분을 실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이 5일 새벽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백신에 미국 국기가 표시돼 있다. [뉴스1]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얀센 백신 101만 명 분을 실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이 5일 새벽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백신에 미국 국기가 표시돼 있다. [뉴스1]

지난 3월 10일 미국 백악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다른 나라와 나누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현영 특파원

박현영 특파원

"우리는 미국인을 우선 확실히 돌보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그러고 나서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백신 해외 지원을 언급했지만, 방점은 미국인 백신 접종을 우선하겠다는 데 찍혀 있었다.

미국, 기부 백신 2500만 회분 배포
“중국ㆍ러시아처럼 조건 안 건다”
한국 “코백스에 획기적 기여 발표”
백신 안 받은 일본 8억 달러 약속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줄곧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민 백신 접종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혀온 터였다.

미국은 성인 인구의 세 배인 7억5000만 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을 6개 제약회사와 계약했다. 또 이들이 미국에 우선 공급하는 조건을 걸어 사실상 백신을 '싹쓸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백신을 나누라는 국제사회 압력이 커지자 결국 바이든 정부는 이웃 국가를 시작으로 곳간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8일 미국은 사용하지 않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캐나다와 멕시코에 각각 150만, 250만 회분을 ‘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 25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000만 회분을 전 세계를 상대로 풀겠다고 밝혔다.

5월 17일엔 미국이 사용 중인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2000만 회분 공여 소식도 전했다. 성인의 절반 이상이 1회 이상 백신을 맞은 가운데 접종 속도가 더뎌지자 내린 결단이다.

미국의 백신 공유 관련 발언 변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의 백신 공유 관련 발언 변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외부 요인도 있었다.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에 백신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갔다.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은 백신 1억660만 회분을 해외에 지원했다. 69개국에 무상지원, 28개국에 수출했다. 러시아는 40개국 이상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다 지난달 7일 시노팜 백신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긴급승인을 얻었다. 이달 4일 시노박 백신도 승인받았다. 중국 백신도 WHO 등이 운영하는 세계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를 통해 배포할 수 있게 돼 미국 백신과 점유율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 우선 2500만 회분 배분처를 발표했다. 75%인 1900만 회분은 코백스를 통해 라틴아메리카(700만 회분), 남아시아(700만 회분), 아프리카(500만 회분)에 제공한다.

25%인 600만 회분은 미국이 한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에 직접 지원한다. 5일 새벽 한국에 도착한 얀센 백신 101만 회분이 여기에 포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제공 대가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CNN 스페인어판 인터뷰에서 "백신을 제공하는 몇몇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아무런 정치적 조건이 없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갈취하지 않는다. (백신을) 제공하는 다른 나라들처럼 조건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다.

게일 스미스 국무부 글로벌 코로나19 대응 조정관도 "정치적 호의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목표는 팬더믹을 종식하고 가능한 한 빨리 (백신) 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가운데 2000만 회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발표한 아스트라제네카 6000만 회분을 더하면 모두 8000만 회분을 푼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가운데 2000만 회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발표한 아스트라제네카 6000만 회분을 더하면 모두 8000만 회분을 푼다. [AFP=연합뉴스]

대가성은 강력히 부인했지만, 미국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는 숨기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 해외 공여를 발표하면서 "우리 가치와 혁신과 독창성, 그리고 미국 국민의 근본적인 품위를 보여줌으로써 세계를 이끌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버리고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백신 공유로 팬더믹 종식에 기여하면서 쪼그라든 미국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민주주의 동맹을 규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바이든은 "미국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의 싸움에서 세계 백신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나치 독일과 싸우는 영국에 무기 제공을 약속하면서 "미국은 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가 되겠다"고 한 말을 연상케 한다. 동맹과 연대의 상징적 표현을 바이든이 다시 꺼내쓴 셈이다.

미국은 리더십을 되찾는 여정에 다른 나라들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뜻을 여러 경로로 피력해 왔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특히 백신을 나눈 동맹 간에 이 같은 기대치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다음 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 및 백신 관련 협력이 논의될 예정이다. 스미스 조정관은 기자회견에서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백신 공급과 팬더믹 종식을 위한 공동 노력에 관해 파트너들과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코백스에 각국이 추가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독려해왔다. 이에 화답하듯 김부겸 총리는 지난 2일 코백스 정상회의 연설에서 "한국은 코백스에 획기적인 기여 확대를 추가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여금 대폭 상향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일본 기여금 등을 참작해 최대 1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 지난해 10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2일 일본은 코백스에 추가 8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2일 일본은 코백스에 추가 8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같은 날 8억 달러 추가 기부를 발표했다. 지난해 2억 달러에 더하면 총 10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기부받지 않았다.

코백스 최대 기부 국가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20억 달러씩 두 차례 기부를 약속하면서 "다른 나라도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얀센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얀센 백신 1억 회분을 10억 달러에 계약했다. 1회분에 10달러꼴이다. 단순 계산하면 한국이 받은 얀센 백신 101만 회분은 약 1000만 달러어치다.

백신값보다 더 큰 지출을 치르게 됐지만, 제 앞가림에만 급급했던 한국이 경제 규모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백신으로 더욱 끈끈하게 묶인 한미 동맹은 덤이다. 다만,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공짜로 기증받은 뒤 기부를 결심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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