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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해체 또 들고나온 북…한국 종전선언 명분 약해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정부는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 유엔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최근 북한이 다른 입장을 밝힌 사실이 확인됐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4위원회에서 “유엔사는 미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행정과 예산 모든 면에서 유엔과는 무관하다”며 “즉각 유엔사 해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또 유엔사를 “유엔과는 무관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사령부”로 규정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엔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김인철 유엔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은 유엔총회 제6위원회 회의에서 “유엔사는 유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령기관”이라며 “유엔사가 한국에 남아 있을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종전선언 드라이브를 걸며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이런 발언이 나온 건 의미심장하다. 북한 역시 한국과 미국에서 제기되는 종전선언의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우려의 핵심은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이 자칫 북한의 유엔사 해체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6·25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미·중이 전쟁 종료를 선언할 경우 북한이 ‘전쟁이 끝났으니 정전협정 체제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유엔사는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때 방어할 명분이 훼손될 소지가 있다.

이런 와중에 김 대사가 또다시 유엔사 해체를 주장한 것이다. 종전선언의 ‘몸값’을 높이고 한국을 향해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과의 종전선언 협의를 유도하라는 압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종전선언의 불씨를 살리려는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 대사의 발언은 결국 종전선언을 전쟁 종료 이후의 질서, 즉 유엔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만큼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는 정부 주장이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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