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경제 제재 통해 북 핵기술 이전 막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사진)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8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강력한 경제제재 등으로 북한의 군사적 핵기술 이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시 독트린 이후 미국 대외정책'이란 주제의 서울대 특강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이 협조해 북핵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에 정권교체가 현실적이긴 하지만 북한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내부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부시 정부의 최근 몇 년간 대외정책은 이라크 침공과 핵확산 방지에 모두 실패했다"며 "미국이 지역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국식 민주주의를 강요한다면 오히려 반미감정을 자극해 더 많은 테러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네오콘)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관련, "반(反)부시 여론이 득세하더라도 민주당 내에서 부시의 외교정책을 대체할 만한 더 좋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은 계속 문제가 되고 변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 학자로 알려졌으나 최근엔 저서 등을 통해 부시의 중동 정책을 비난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북한 핵 문제는 대단히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세 종류다. 첫째는 군사력으로 압박하는 것인데 이는 이라크에서 보았듯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6자회담 등 대화.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그러나 과거의 대화 노력과 햇볕정책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는 정권교체로서 가장 현실적이기는 하나 미국이나 다른 국가가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에선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내부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햇볕정책은 서독과 동독이 TV 방송을 공유했던 식으로 개방과 교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핵확산 방지정책은 1968년 핵 보유국이 5개국밖에 없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핵 문제를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 없이는 전 세계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핵 기술 이전을 막는 것이다.

북한은 이라크가 미국에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핵을 보유하게 되면 공격당하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경제제재와 6자회담 참가국들의 협조로 북핵 상황을 관리해가야 한다.

아시아의 관련국인 한국.중국.일본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대립 등 민족주의 강화 경향이 나타나 상호협조가 잘 이뤄질지 우려된다. 일본이 독일처럼 역사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동아시아의 우호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해 부시 정부가 일본 측에 자제를 요청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전쟁 후 이라크의 혼란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부시 정부는 사담 후세인을 끌어내리면 이라크에 민주사회가 건설되고 테러리즘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반미감정을 자극해 과격한 극우 이슬람주의와 테러리즘을 야기하고 말았다. '강하고 선한 대국'으로서의 미국은 신기루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전 세계 민주화'라는 부시 독트린은 잘 포장된 정책에 불과하다. 앞으로 몇 년간 미국 정부는 대외정책을 변화.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신은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