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외국은행들 '틈새시장' 공략 국내 은행원 상대 대출 세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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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요즘 취재 현장에서 만난 시중은행 간부들이 종종 이같이 하소연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은행 본점 바로 앞에서 외국계 은행 직원들이 '은행원을 위한 신용대출 상품, 최대 6000만원까지'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분명 동업자 간 상도의에 어긋난 듯합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평범한 경제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르면 은행원은 소속 은행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밖에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씨티.SC제일.HSBC 등 외국계 은행들은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낸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입니다. HSBC의 경우 지난해 12월 은행원들을 위한 신용대출 상품인 '뱅커스론'을 출시해 올 8월까지 500억원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전국에 11개 지점밖에 없는 HSBC로서는 '대박'인 셈이지요.

HSBC 관계자는 "대출 한도가 꽉 차서 자기 은행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은행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최대 대출한도 6000만원, 최소금리 6.8%의 조건으로 빌려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소속 은행원의 대출을 규제하는 금감원 규정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내용입니다. 그럼 왜 이제서야 이 같은 틈새상품이 대박을 터뜨렸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동안 은행은 소속 은행원에게 0%에 가까운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줬는데, 여론의 비판에 밀려 특혜를 줄여버렸습니다.

하지만 은행원은 역시 은행원입니다. HSBC 관계자는 "은행 직원은 신분보장도 되고 신용도가 좋기 때문에 신용대출 고객으로는 최고"라고 합니다.

결국 자기 은행에서 빌릴 수 없는 돈을 출근길 문 앞까지 찾아온 다른 은행에서 빌릴 수 있으니 불평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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