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재 현장에서 만난 시중은행 간부들이 종종 이같이 하소연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은행 본점 바로 앞에서 외국계 은행 직원들이 '은행원을 위한 신용대출 상품, 최대 6000만원까지'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분명 동업자 간 상도의에 어긋난 듯합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평범한 경제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르면 은행원은 소속 은행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밖에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씨티.SC제일.HSBC 등 외국계 은행들은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낸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입니다. HSBC의 경우 지난해 12월 은행원들을 위한 신용대출 상품인 '뱅커스론'을 출시해 올 8월까지 500억원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전국에 11개 지점밖에 없는 HSBC로서는 '대박'인 셈이지요.
HSBC 관계자는 "대출 한도가 꽉 차서 자기 은행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은행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최대 대출한도 6000만원, 최소금리 6.8%의 조건으로 빌려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소속 은행원의 대출을 규제하는 금감원 규정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내용입니다. 그럼 왜 이제서야 이 같은 틈새상품이 대박을 터뜨렸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동안 은행은 소속 은행원에게 0%에 가까운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줬는데, 여론의 비판에 밀려 특혜를 줄여버렸습니다.
하지만 은행원은 역시 은행원입니다. HSBC 관계자는 "은행 직원은 신분보장도 되고 신용도가 좋기 때문에 신용대출 고객으로는 최고"라고 합니다.
결국 자기 은행에서 빌릴 수 없는 돈을 출근길 문 앞까지 찾아온 다른 은행에서 빌릴 수 있으니 불평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