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중도하차 '역대 최단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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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30일 퇴임했다. 취임 8개월 20여일로 역대 전경련 회장 중 최단명을 기록하게 됐다.

말단사원으로 SK에 입사해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고 '재계 총리'라는 전경련 회장까지 됐으나 SK네트워크(옛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SK해운 불법 비자금사건 등의 책임을 지고 중도하차했다.

전경련은 이날 회장단 간담회에서 발표문을 통해 "기업들이 제공한 정치자금 문제가 사회적 파문을 불러온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면서 "투명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조치를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孫회장의 취임 일성은 가진 자가 솔선수범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재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욕을 불태웠으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SK네트워크 분식회계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투명 윤리경영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재계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자격시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내외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K해운 비자금사태를 맞아 입지가 급격히 약화됐다. 한달 전부터는 공식행사에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월례 회장단회의까지 수주째 공전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유공(현재 SK㈜)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작업을 주도해 고 최종현(崔鍾賢) SK회장으로부터 '사업의 동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SK 관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대내외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 SK그룹 내 입지도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孫회장은 이날 퇴임사의 행간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나름대로 시대상황의 부득이한 산물이라는 소회를 얼핏 드러내기도 했다. "과거의 잘못은 철저하게 바로잡아 새로운 의지와 제도를 다져나가야 하지만 과거 문제에만 매달려 교각살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孫회장의 사퇴로 전경련을 이끌 비중있는 회장을 영입하는 일이 더욱 시급해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실세 회장을 선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으나 이건희 삼성, 구본무 LG ,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빅3'의 고사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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