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물방울 그림···깊이를 숨긴 매혹적인 작품 "

중앙일보

입력 2021.09.08 16:10

업데이트 2021.09.08 19:05

김오안 감독이 브리지트 부이요 감독과 공동연출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빅처스]

김오안 감독이 브리지트 부이요 감독과 공동연출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빅처스]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픽처스]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픽처스]

지난 1월 별세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1929~2021)을 다룬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가 9일 메가박스 백석에서 개막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12·14일 상영된다. 국내 첫 공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프랑스·한국 공동제작 다큐멘터리로 지난 5월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캐나다 토론토의 핫독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유럽 몇몇 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지난 6월 폴란드 크라코우 영화제에서는 예술성이 높은 영화에 주는 실버 혼(Silver Horn)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DMZ영화제서 12, 16일 국내 첫 공개
둘째 아들 김오안 공동연출 겸 음악
"아버지는 달마대사처럼 평생 수행"

연출을 맡은 사람은 김오안(47)과 브리지트 부이요(65) 감독. 프랑스 국립예술대학(에콜 드 보자르)와 파리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파리에서 사진작가와 영화감독이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 감독은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연출뿐 아니라 음악과 내레이션까지 맡은 이 다큐멘터리가 그의 첫 장편 영화가 됐다.

영화 '물방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 '물방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왼쪽이 그의 평생 동반자였던 마르틴 김 여사.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왼쪽이 그의 평생 동반자였던 마르틴 김 여사.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김창열 화백이 자택에서 손주를 포옹하고 있다.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한 장면. 김창열 화백이 자택에서 손주를 포옹하고 있다. [사진 미루픽처스]

영화는 맑고 투명한 물방울 그리기에 집착한 아버지의 그림을 쏙 빼닮았다. 시적인 영상과 음악, 아버지와의 대화를 공들여 섬세한 작품으로 빚어냈다. 영화엔 1929년 평안도 맹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해 침묵에 들러싸여 산 화가의 뒷모습이 담겼다.

영화는 중년이 된 아들이 수수께끼처럼 비밀에 싸인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정의 기록인 동시에 '물방울 그림'의 기원을 파고들어 간 영상 보고서다. 내레이션에서 "아버지를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빈틈이 있었다"고 한 김 감독은 6일 본지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듯이 아버지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재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다.

영화를 구상한 동기는. 
"아버지는 점점 연로해지고 계셨고, 아버지와 저는 각각 서울과 파리에 살고 있었다. 이 작업으로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영화를 통해 내가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던 모든 질문을 다 할 수 있었다."
내레이션에서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의 침묵이었다"고 했다.  
"저는 아버지가 말이 없으셔서 항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침묵은 많은 사람에게 그 속을 짐작할 수 없게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침묵을 불편해한다. 이 영화로 아버지의 침묵 아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다."
촬영하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됐나.
"물론이다. 묻고 싶었던 것을 모두 물었고, 아버지 역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해에는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 작업을 안 했다면 정말 큰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촬영하는 동안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는데 지금 보니 아버지가 저와 형을 낳았을 때 지금 저의 나이더라. 그 당시의 아버지와 동질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가까이 있는 가족이기에 볼 수 있는 김 화백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그는 어린 아들들에게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수행해 깨달음을 얻은 달마대사 얘기를 즐겨 들려줬고,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면 직접 줄을 쳐 칸을 만든 공책에『도덕경(道德經)』을 필사했다. 아들의 눈에 선(禪)과 도교 사상에 심취한 아버지는 '작업실의 수도자' '화실 안의 연금술사'였다.

달마대사 이야기가 비중 있게 언급됐다.
"잠들지 않기 위해 자기의 눈꺼풀을 베어버린 달마대사의 광기 어린 집요함과 완고함이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 그림에서 물방울을 지우고 나면 그냥 빈 캔버스가 나오는데, 저는 이게 달마대사가 마주 보던 거친 벽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를 거친 벽면이라고 생각하고 명상한 게 아니었을까."

영화는 6·25 때 김 화백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 트라우마도 짚는다. 김 화백은 열다섯 살에 북한에서 도망쳐 남에 왔고, 남한에선 북한 지지자로 오해받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것은 눈앞에서 숱한 주검을 목격한 충격이었다.

김 감독은 "어머니 말씀으론 아버지에겐 전쟁의 트라우마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새벽에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했다"며 "영화를 통해 이 트라우마가 그에게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프랑스인 부인 마르틴 김 여사는 "그는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다"고 전했다.

김 화백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김 감독은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펼쳐놓는다. 그것은 비극적 역사를 체험한 인간의 소리 없는 비명, 평생 불안을 지우기 위해 반복한 수행, 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였다는 것. 김 감독은 "아버지는 자신의 화실에서 연금술사처럼 오랜 세월 연구한 끝에 그가 본 모든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어릴 땐 아버지가 그린 게 물방울이 아니라 오토바이인 줄 알았다"는 그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아버지 작품에 경외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물방울 그림은 그 안에 굉장한 깊이를 숨기고 있는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촬영하고 싶었다고. 
"아버지에게 고향은 너무도 큰 의미였다. 평생 두고 온 천국처럼 그곳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할 수 있다면 그 고향을 반드시 영화에 넣고 싶었고, 아버지를 고향 맹산에 모시고 가서 찍고 싶었다. 다양한 채널로 타진했으나 기다리라는 대답만 들으며 시간이 흘렀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6월크라코우영화제에서 실버혼 상을 벋은 김오한 감독(왼쪽)과 브리짓 부이요 감독[사진 김오운 감독]

6월크라코우영화제에서 실버혼 상을 벋은 김오한 감독(왼쪽)과 브리짓 부이요 감독[사진 김오운 감독]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방울의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저는 물방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답할 수 없다"면서 "만약 물방울이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됐을 때 소통은 거기서 닫혀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제가 확신하는 것은 물방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 안에는 영혼도 담겨 있고, 빛도 담겨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작은 네다섯 개의 물방울을 그리고서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버지에 대한 영화 제작과정 자체가 제겐 치유과정이었다"며 "한국 관객들이 아버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발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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