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것부터 “벽돌쌓기”/삼성(그룹별 북방전략 점검: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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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학연수ㆍ전문가 양성 한발 앞서/진출전 철저한 분석과 준비갖춰
삼성의 북방전략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이건희회장은 취임직후부터 자율경영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각종 사업계획은 경영자가 아닌 실무자의 분석과 판단에서 출발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 북방진출에서도 그러한 방침이 적용되었다.
실제로 이회장은 여지껏 소련에는 간적이 없으며 중국방문은 두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룹내 관계부서 임직원들은 2∼3년전부터 매년 2백∼3백명씩 중국과 소련에 출장을 가고 있다.
5년전부터 중국어 사내연수가 시작됐고 거의 동시에 대만등 해외연수도 병행,중국실무를 사전에 익히도록 했다. 지금은 그룹내에 중국어 및 무역실무를 갖춘 전문가가 1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소련붐이 일기전에 관련직원들의 러시아어 연수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장기 주재토록 한 것도 삼성뿐이다.
삼성은 조직력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자칫 의사결집이 늦고 실행에 뒤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남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선행관리전략을 내놓고 있다.
어학연수등 직원교육뿐 아니라 교역에서도 중국이 개방정책을 펴기 시작한 지난 80년에 이미 석탄을 수입하는등 일찍부터 서둘러 왔다.
북방과 관련,삼성의 또하나의 특징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하는 점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은 물론 합작투자도 모스크바 스포츠호텔,중국 광동성의 조미료 제조공장,헝가리 TV공장 등 골고루 추진중이며 특히 기술분야에 관심을 높여 최근 중국ㆍ소련ㆍ체코 등 3개 국과 기술교류계약까지 맺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최대의 교역실적을 갖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의 대 북방교역규모는 42억달러인데 삼성은 이중 15%인 6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삼성이 한국 총수출입중 차지하는 비중이 10%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 스스로도 타지역보다 북방에 더 많은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는 셈이다. 「벽돌쌓기」식 북방전략의 결과라는 삼성측의 설명.
이회장은 평소 그룹내 북방관계자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권국가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손쉬운 것,가능한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이 때문에 소련에 대한 첫 투자대상으로 모스크바시내의 호텔을 택했다.
외화획득에도 유리하고 장래 투자확대의 거점이 될 수 있는데다 호텔의 개ㆍ보수작업과 관련,건설부문의 동반진출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등 다목적의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또 최근 가동에 들어선 모스크바근교 VCR공장의 경우 지난해 플랜트수출 계약을 맺은뒤 장비설치는 물론 기술자까지 파견,현지 기능공들을 상대로 기계작동법등을 상세하게 지도해 주었다.
이같은 효과는 2차 플랜트수출로 이어져 최근 5억달러어치의 대규모 수출계약도 맺을 수 있었다.
가능성이 보인다고해서 막바로 뛰어들지는 않지만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진출의 여지가 보이기 시작할때부터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삼성의 특징이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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