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공간이 만드는 「여백의 미」-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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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문은 자연공간에서 인조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그 인조공간에 빛과 공기를 넣어 주는 통로다.
이처럼 자연공간과 인조공간은 바로 문이나. 창을 통해서 연결되고 거기에서 주택공간의 독특한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문이나 창은 주택 정신성향을 나타내주는 눈동자와 같다. 그런 점에서 문은 건축가의 정신세계를 가장 짙게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살의 구조와 미가 그 민족의 기호나 정서를 잘 반영해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살의 기본형을 이루고 있는 완자형·띠살무늬·빗살무늬형 등은 우리 민족기호와 어우러져 이뤄진 우리 고유의 형태들이다.
우리나라 문살이나 창살의 발달은 궁정이나 사원·민간주택이 각각 독자적인 형태를 보인다. 전자가 외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후자는 철저하게 자생적으로 발달한 양식이다.
단순하고 정태적이며 폐쇄적이기도 한 우리 전통가옥의 문살에는 「용」자살·띠(대)살·완자살·「정」자살·빗살·숫대살 등이 있고, 창문 형태로는 살창·벙어리 창·사창·수창·봉창 등이 있다.
용자 살은 세로로 간살 하나를 세우고 가로로는 간살 두개를 질러 만든 가장 단순한 형태로 문틀과 함께 전체적인 모양이 마치 「용」자와 같다.
일반 가정에서 지금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띠살 창은 상대와 하대의 등살이 4개, 중대가 5개이고 장살은 보통 11개 정도를 세운다.
완자창의 표본으로는 흔히 창덕궁 악보재를 들지만 다소 서민 풍의 친근 미를 풍기는 것으로는 역시 창덕궁의 연경당이나 농수정을 꼽을 수 있다. 현대식 가옥의 유리창에서도 발견되는 완자 창은 「만」자형과 「아」자형이 주류를 이룬다. 창덕궁 흥복헌에서 아 자 창의 다양한 변화를 볼 수 있다.
간 살을 좌우로 비스듬히 꽂은 빗살창(사격자 창)은 궁궐이나 사원에서 주로 쓰이고, 벙어리 창은 방과 방 또는 마루의 사이를 막기 위해 쓰인다. 사창은 창호지를 벗겨 내고 모기장을 붙인 것을 말하고 봉창은 문틀 없이 벽을 뚫어 살을 꽂아 만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형태다.
창호지를 바를 때 중국과 일본이 바깥 문살에 바른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안 문살에 바른다. 이는 창 밖이나 정원의 풍경을 중시했던 중국인과 일본인보다는 방안을 중시했던 한국인들의 미의식을 잘 대변해 주고있다.
단선형으로 구성된 크고 작은 공간이 자아내는 여백의 미는 한국의 창과 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이다. <글 김준범 기자·사진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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