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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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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주둔 연합국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를 격노케 한 건 1946년 2월 1일자 마이니치 신문의 특종보도였다. 맥아더는 일본이 군국주의를 청산하고 민주국가로 거듭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문 작업은 일본 정부의 손에 맡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신문에 보도된 일본 정부의 시안은 일왕의 통치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등 기존의 제국헌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맥아더는 이를 계기로 전면에 나선다. 그는 연합군 민정국장 휘트니에게 조문 작업을 지시하면서 3개 항목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뒷날 '맥아더 노트'라 불리게 된 이 문서의 둘째 항목이 바로 현행 헌법(일명 평화헌법) 9조의 밑그림이 된 전쟁 포기 원칙이다. 민정국 장교들에 의해 초안이 완성돼 일본 정부에 전달된 것은 불과 열흘 뒤였다.

이 과정은 두고 두고 논란의 화근이 된다. 현행 헌법은 주권국가의 자주적인 의지로 만든 게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것이므로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헌론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논리의 신봉자인 아베 신조 총리는 "패전국 일본의 반성문"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

호헌론자들은 사실관계에서부터 인식을 달리한다. 역사학자들은 마이니치 보도에 앞선 1월 24일 시데하라 기주로 총리가 맥아더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평화주의, 즉 전쟁 포기 원칙을 먼저 꺼낸 사실에 주목한다. 훗날 맥아더는 의회 청문회에서 "전쟁 포기는 일본 측의 제안"이라고 증언했다. 경위야 어떻든 이 초안은 일부 수정을 거쳐 중의원에서 찬성 421, 반대 8표로 가결돼 오늘에 이른다.

최근 일본에서 '헌법 9조를 세계유산으로'라는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와 시사 풍자로 유명한 개그맨의 대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평화헌법을 "이상사회의 구현을 꾀한 미국인과 다시는 전쟁을 않겠다고 결의한 일본인의 합작품"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피로 물들여진 그 시대에 인류가 행한 단 하나의 기적"이라며 유네스코의 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3일로 평화헌법이 공포된 지 60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지나 제2의 인생 행로로 나아가는 갈림길이다.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로 치부돼 '박물관'으로 갈지, 인류의 이상주의가 집약된 '세계 유산'으로 인정받고 생명력을 연장할지 평화헌법은 기로에 서 있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