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는 이를 계기로 전면에 나선다. 그는 연합군 민정국장 휘트니에게 조문 작업을 지시하면서 3개 항목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뒷날 '맥아더 노트'라 불리게 된 이 문서의 둘째 항목이 바로 현행 헌법(일명 평화헌법) 9조의 밑그림이 된 전쟁 포기 원칙이다. 민정국 장교들에 의해 초안이 완성돼 일본 정부에 전달된 것은 불과 열흘 뒤였다.
이 과정은 두고 두고 논란의 화근이 된다. 현행 헌법은 주권국가의 자주적인 의지로 만든 게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것이므로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헌론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논리의 신봉자인 아베 신조 총리는 "패전국 일본의 반성문"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
호헌론자들은 사실관계에서부터 인식을 달리한다. 역사학자들은 마이니치 보도에 앞선 1월 24일 시데하라 기주로 총리가 맥아더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평화주의, 즉 전쟁 포기 원칙을 먼저 꺼낸 사실에 주목한다. 훗날 맥아더는 의회 청문회에서 "전쟁 포기는 일본 측의 제안"이라고 증언했다. 경위야 어떻든 이 초안은 일부 수정을 거쳐 중의원에서 찬성 421, 반대 8표로 가결돼 오늘에 이른다.
최근 일본에서 '헌법 9조를 세계유산으로'라는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와 시사 풍자로 유명한 개그맨의 대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평화헌법을 "이상사회의 구현을 꾀한 미국인과 다시는 전쟁을 않겠다고 결의한 일본인의 합작품"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피로 물들여진 그 시대에 인류가 행한 단 하나의 기적"이라며 유네스코의 세계 무형 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3일로 평화헌법이 공포된 지 60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지나 제2의 인생 행로로 나아가는 갈림길이다.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로 치부돼 '박물관'으로 갈지, 인류의 이상주의가 집약된 '세계 유산'으로 인정받고 생명력을 연장할지 평화헌법은 기로에 서 있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