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에 남북축구 다시 연다니… /옛 라이벌 가슴 설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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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46년 경평전대표 정남식­김인모옹/46년열기 해방겹쳐 전국 “들썩”/일제시샘 35년후 중단 가슴아파/정치목적떠나 뛰다보면 한핏줄느껴
『경평전은 일제치하와 해방직후까지 온국민의 최대 관심사중 하나였어요. 남북이 분단돼버려 죽기전에 다시는 서울ㆍ평양전을 못본다고 생각했었는데….』
44년만에 처음으로 남북간 축구교환경기가 평양에서 먼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진 19일오후 시내호텔 코피숍에 마주앉은 7순의 경평전 라이벌은 감개가 무량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46년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평전에 양팀의 대표로 각각 참가했던 정남식(73ㆍ서울 석촌동 16의15)ㆍ김인모(76ㆍ서울 수유1동 478)옹.
서로의 손을 뜨겁게 마주잡고 당시를 회상하던 두 원로 축구인의 마음은 이미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나오는 그라운드로 달려가 있었다.
『모든 매스컴과 국민들의 화제가 온통 경평전에 쏠린만큼 대단한 열기였어요.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경성운동장주변을 꽉 메웠었지.』
보성전문 축구부 3년 선ㆍ후배사이인 두사람은 46년 3월25,26일 이틀간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평전을 잊지못한다.
평양이 고향인 김옹은 41년졸업후 귀향,당시 평양축구단 소속으로 활약중이었고 후배였던 정옹은 서울의 교통부축구팀 선수였다.
46년대회는 35년이후 11년만인데다 해방의 감격까지 겹쳐 전국이 온통 축제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첫날은 서울이 2­1로 이겼어. 실력이 한수위였거든. 한데 둘쨋날은 평양이 3­1로 이겼는데 심판의 편파판정때문이라고 서울사람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여졌어요.』
『첫날 경기를 지고나니 분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기술이 안되면 투지로 밀고나가기로 했어. 보성전문 대선배인 김용식씨를 태클로 밀어붙이니까 가만두지 않는다며 펄쩍펄쩍 뛰시더군.』
서울팀의 레프트윙이었던 정옹과 평양팀 센터포워드였던 김옹은 라이벌답게 44년전 경기의 편파판정여부를 놓고 한참이나 즐거운 입씨름을 벌였다.
『김선배는 별명이 「깍꾸」였어요. 발로 남을 마구 찬다는 뜻이지. 나는 하도 축구를 곱게 한다해서 「신사」였고….』
절대 자신의 별명을 말하지 말라며 후배 정옹의 입을 틀어막던 김용은 「깍꾸」얘기가 나오자 노안을 붉히며 웃어버렸다.
『대회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크자 일제는 경평전이 지역감정을 심화시킨다는 등 갖가지 구실로 35년이후에는 대회를 못열게 했다더군요.』
정옹은 48년 런던올림픽때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54년 스위스월드컵때엔 38세로 출전하는 등 화려한 현역생활을 하다 그뒤에도 고려대ㆍ한양대 축구코치,프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축구인생을 살았다.
김옹은 46년 월남한뒤 48년뒤늦게 육사에 들어가 현역군인으로 중령까지 지낸뒤 예편해 축구와는 다른 인생을 살았다.
『아시안게임이나 월드컵예선경기 등에서 남북한선수들이 겨루는 걸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앞에서 분단국임을 상징하는 경기가 돼버린 것같아 마음이 아파요.』
『남북당국도 부활되는 남북전에 어떤 정치적 목적을 두려해서는 안돼요. 그저 열심히 뛰고 함께 응원하다보면 저절로 우리가 한민족,한핏줄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거야.』
두 원로축구인은 서울에서 열릴 대회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때 김옹은 평양팀의 대선배로서 평양선수들에게 「투지」를,정옹은 서울선수들에게 기술의 축구를 각각 가르쳐줄 계획이다.<김종혁ㆍ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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