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제 질서 시험하는 복잡한 국익 다툼|중동 사태 발발 6주…재편되는 세계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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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페르시아만 사태가 몰고 온 두드러진 국제 정치적 변화는 미·소·서구 등의 강대국 이익을 위한 결합과 더욱 분명해진 아랍권 분열이다.
미국은 사태 발생 후 즉각 유엔안보리를 통해 대이라크 봉쇄를 이끌어 낸데 이어 군사 및 경제 압력을 주도, 확산시켜 나감으로써 「세계의 경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미국은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절실히 원해왔던 중동내 군사력 진출을 실현함으로써 미국의 대중동 영향력을 강화하는 도약대로 삼고 있다.
유엔 또한 미국 및 서방들의 입김이 작용되긴 했지만 이라크를 견제하는 세계 여론을 묶는데 있어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 그 권위를 높이게 됐다.
이와달리 강대국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은 퇴조를 보였다.
미국과 더불어 냉전시대의 양극을 이뤘던 소련 역시 대중동 정책의 명분보다 국익을 우선, 미국의 대이라크 제재 대열에 동참했으며 동구권도 탈이데올로기의 색채를 더욱 분명히 했다.
아울러 하나의 유럽을 목표로 통합을 서두르고 있는 서유럽 진영은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 국별로 첨예한 이해 관계가 대립, 정치·군사·경제적으로 결집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노정 시켰다.
미국 못지 않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대국」 행세를 열망해온 일본도 이번 사태를 맞아 실리에 치중,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재확인시켰다.
당사국인 이라크는 침략자로서 세계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정치·군사적으로 중동의 최대 실력자임을 과시했다.
이라크는 특히 아랍권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반 외세 아랍 민족주의를 효과적으로 부추김으로써 사태만 잘 마무리 지으면 앞으로 중동에서 범 아랍주의의 대부위치를 굳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우디·이집트로 대표되는 아랍 온건국들은 이번 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미국 등 외세에 의존하는 무기력을 노출시켰다.
그러나 종래 반미 입장이던 시리아가 돌연 미 입장을 지원, 사우디아라비아에 병력을 보내기로 함으로써 아랍내의 새로운 동맹 판도를 형성하는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당장 5억 달러의 경제 원조를 따내는 「보상」을 받았다.
리비아·알제리·수단 등 강경 회교국들은 아랍권의 자존심을 내세워 이라크를 옹호하고있으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했다는 명분에 밀리는 입장이다.
중동의 또다른 화약고인 이스라엘은 페르시아만 사태를 계기로 어부지리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최근의 곤경에서 당분간은 벗어나게 됐다.
이스라엘이 이번 중동 사태로 관심의 표적에서 벗어남에 따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시간을 벌게된 것이다.
이번 중동 사태는 따라서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는 고통의 연장만이 주어진 셈이다. <김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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