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동대문 주먹 '낙화유수' 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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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5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동대문 사단'의 돌격대장 김태련(74.사진)씨가 뇌출혈로 2일 오후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숨졌다.

김씨는 유지광 계보의 좌장(座長)이었다. 유지광은 50년대 주먹계에서 이름을 떨친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였다. 김씨는 당시로서는 큰 키(1m75㎝)에 호리호리한 몸매, 유도 2단의 무술 실력, 귀공자풍의 외모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52학번)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남녀가 그리워하는 정'이란 뜻의 '낙화유수' 별명도 여성들이 지어준 것이다.

김씨는 51년 부산 피란 시절 단국대 출신 장윤호를 만나면서 주먹계에 뛰어들었다. 62년 이정재가 군사혁명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유지광이 정치깡패 혐의로 구속됐을 때 동대문 사단을 이끌었다. 생전에 김씨는 "동대문 사단의 대표주먹들은 명석한 두뇌와 깔끔한 매너로 다른 주먹패와는 차별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걸어온 길이 사람에 따라 비난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협객의 길을 걸어왔음을 자부한다"고 했다.

김씨는 5.16 직후 정치깡패로 법정에 섰다. 대학 시절 친구였던 당시 혁명재판부 양준모 판사가 그를 보고 "외교관이 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 있느냐"고 묻자 서울대 출신이면서 주먹을 쓸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당당히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03년 11월 고희연에는 김두한의 '종로파',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 이화룡의 '명동 사단' 등에서 활동하던 원로 주먹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됐다.

김씨는 말년에 경호회사를 운영했다. 5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 100㎏이던 몸무게가 60㎏까지 줄었다.

이날 김씨의 빈소에는 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씨, 명동 사단의 대부 신상현씨 등 200여 명이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씨의 후배 홍승문(64)씨는 "세인들은 정치깡패라고 하지만 한국전쟁 뒤 어수선한 시절에 자유당 정부를 돕는 게 '구국의 길'이란 생각에 주먹을 썼던 것"이라고 그를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부자(72)씨와 1남2녀가 있다. 김씨의 장례는 과거 동대문 사단의 친목단체인 천일동우회(구 화랑동지회) 주관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4일 오전 9시30분, 02-2262-4800.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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