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검은돌흰돌] 오규철 … 홍민표 … 구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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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로 데뷔 이후 줄곧 광주광역시에서 살아 '무등산 산신령'으로 통하는 오규철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싸움바둑으로 유명했고 속기에 강했다. 이런 장기가 발휘되어 노장으로는 유일하게 2006 한국리그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고 파크랜드에 지명돼 조훈현-강동윤-김주호-서건우 등과 한 팀이 되었다.

그러나 강자들만 우글거리는 한국리그에서 오규철의 싸움바둑은 마치 흘러간 옛노래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개인전적은 5전5패. 팀도 8개 팀 중 7,8위를 전전했다.

지난주 파크랜드와 리그 1위팀 KIXX가 맞붙었다. 최철한.박정상 쌍포와 홍민표.최원용, 이재웅 등 잘나가는 신예로 구성된 KIXX의 승리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덧 팀의 '버리는 카드'가 된 오규철이 첫판에 한국리그 5연승을 질주해온 홍민표를 꺾어버렸다. 이 승리에 힘입어 팀도 무적 KIXX를 3대1로 꺾었고 곧장 4위로 점프했다. 잘하면 포스트시즌까지 넘볼 수 있게 됐다.

"1승이 목말랐다. 큰 짐을 벗은 느낌"이라고 오규철은 말했다.

사흘 뒤인 10월 30일, 홍민표 5단은 LG배 세계기왕전 8강전에 나갔다. 상대는 중국랭킹 1위 구리 9단. 최근 연전연승하며 세계 바둑계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구리는 지난 5월 이 대회에서 우승컵을 따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창호 9단과 조한승 9단까지 3명이 출전했는데 조한승은 중국의 최강 신예 천야오예 5단을 격파했으나 이창호는 난적 후야오위(胡耀宇) 8단에게 꺾이고 말았다. LG배가 또 중국 차지인가 싶었다.

한데 아무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홍민표가 중국의 구리를 꺾어버렸다. 백으로 깨끗하게 완승을 거두며 서슬퍼런 중국의 기세를 꺾어버렸다. 세계 4강에 오른 홍민표는 대만의 저우쥔쉰(周俊勳) 9단과 준결승에서 만나 대진운도 좋다.

오규철과 홍민표, 홍민표와 구리. 이 두 판의 승부가 즐거웠다. 홍민표는 자신만만한 중국 바둑의 콧잔등을 한방 갈겼고 오규철은 노장을 '밥'으로 아는 신예들에게 한풀이 주먹을 날렸다. 승부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처럼 거저먹기는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다음주 삼성화재배에 출전하는 또 한 명의 노장 서봉수 9단과 신예 백홍석 5단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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