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일인관광버스 구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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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잠긴 올림픽도로서 급류 휩쓸려/시민 20여명이 밧줄던져 구해내
오키나와에서 서울에 온 일본인관광객 10명은 11일밤 한강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뻔한 악몽과 함께 한국인의 용감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경험했다.
11일 오후8시40분쯤 서울 압구정동 성수대교 남단 올림픽대로에서 아다데게 나오미씨(51ㆍ여) 등 일본인관광객 10명과 안내원ㆍ운전사 등 12명이 탄 경남관광소속 서울5 바1186호 관광버스(운전사 이인용ㆍ54)가 한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사고는 서울야경구경과 이태원쇼핑을 나온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물에 잠긴 올림픽대로를 무리하게 운행하다 엔진에 물이 들어가 시동이 꺼지면서 일어났다.
버스는 기우뚱거리며 하류쪽으로 깊이 2m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갔다.
『버스가 떠내려간다. 사람이 죽는다』 뒤따라오던 11t트럭 운전사 김태민씨(25ㆍ인천시 계산동)가 트럭에서 밧줄을 들고 뛰어내려 버스를 뒤쫓으며 고함을 질렀다.
딸과 한강물 구경을 나왔던 홍문식씨(44ㆍ사업ㆍ서울 서초동)도 어둠속에서 버스쪽으로 달려갔다.
뒤집힐듯 불안하게 떠내려가는 버스를 붙잡기위해 이들은 성수대교난간과 교차로에서 밧줄을 던졌으나 버스에 채 닿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다.
오후9시쯤 교차로 램프에서 홍씨가 던진 밧줄이 운전석 창밖으로 내민 운전사 이씨의 손에 잡혔다.
2백m 가까이 떠내려간 버스가 깊이 2m가 넘는 물에 휩쓸려 가드레일을 부수고 한강물에 완전히 빠져버리기 직전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더이상의 표류를 막기위해 다리난간과 버스핸들사이에 밧줄이 매어졌다.
버스속의 승객들은 홍씨의 지시로 모두 창문을 뚫고 버스지붕위에 올라와 앉았다.
먼저 미야기 가쓰야씨(39ㆍ회사원) 등 남자 4명이 홍씨와 김씨가 던져준 밧줄을 몸에 매고 다리위로 구조됐다.
『영차,영차.』
도로변에 나왔던 시민 20여명이 밧줄을 끌어당기며 구조에 합세했다.
한사람 한사람씩 끌어올려질 때마다 성수대교주변에서는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일본인들은 땀으로 범벅된 김씨와 홍씨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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