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병과 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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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뚱뚱한 40대의 부인이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핏속에 기름기가 많은 것) 등 이른바 성인병 진료를 받으러 왔다. 이 환자는 『아직 젊은데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고 했다. 환자의 옆에 서있는 60대의 친정어머니 역시 꽤 뚱뚱 했다.
인체의 질병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두 인자의 영향을 받는다. 두 인자란 이 환자에서 생각되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요인을 말한다.
유전적 요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며 체세포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일생동안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은 변할 수 있고 특히 인간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유전성 질환은 무수히 많으나 인체의 질병과 관계되는 유전적 요인은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염색체 이상(예:몽고증), 둘째 단일 유전자 질환(예:지능발육부전을 가져오는 페닐케톤뇨증), 셋째환경요인과 상호 연관되어 질병을 일으키는 다인자성 유전질환(예:성인병), 넷째 임신시 기형발생 물질을 복용했을 때 생기는 유전병 등이다.
앞에서 예를 든 40대 여자의 경우는 타고난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 등에 의한 셋째형에 속한다. 성인병과 유전적 요소의 관계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당뇨병은 췌장에서 충분한 양의 인슐린을 공급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종의 유전병으로 핏속에 당이 증가되고 소변에서도 당이 나온다. 이 병은 특정한 조직적합성 유전자 등을 가진 사람에게 면역학적 손상이나 비만과 같은 환경인자에 의해서 췌장세포가 파괴되고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형성된다.
이 병이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발생빈도가 높고 가족적·인종적 경향 등이 있는 것으로도 유전적 요소를 잘 알 수 있다.
고혈압 역시 유전적 요인이 관계되는데 혈압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트륨이 인체 내 세포막의 이상으로 대사장애를 일으켜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가족적 소인·생활습관·운동부족 등과도 관련이 깊다.
비만도 부모 양쪽이 다 비만일 경우 자녀의 80%가 비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유전경향이 농후한 성인병이다. 이밖에 동맥경화증·암 등도 다른 성인병보다는 약하지만 어느 정도 유전적 요소가 작용된다.
이처럼 성인병과 유전적 요소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성인병은 다른 유전적 질환과 달리 선천적인 유전적 요소 외에도 환경적 요인, 즉 생활습관·스트레스·운동부족·비만·물·흡연·식습관·영양 등의 복합작용에 의해 발생되는 다인적 질환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록 성인병에 걸릴 유전적 요소를 지녔다해도 이들 환경적 요인의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예방관리 할 수 있는 손쉬운 병이라 하겠다.
이1 40대 부인처럼 다분히 유전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성인병환자를 자주 대하면서 유전적 요소를 극복하는 길은 다름 아닌 환경적 요소의 철저한 관리와 조절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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