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치 비축 식량걱정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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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세근특파원 이라크 한국인 공사현장서 2신/전화 힘들어 서울소식 “궁금”/외출못해 바둑ㆍ장기ㆍ체육대회로 사기 진작/한국근로자들에 호의적… 아직 큰 불편없어
이라크에는 약 4백명의 한국인이 남아있다. 공관직원과 건설업체 근로자들이 그들이다.
현대건설의 발전소공사,삼성종합건설의 고속도로공사,정우개발의 철도건설공사가 그 현장이다. 현재 공사잔액은 7억7천6백만달러.
지난 2일의 사태발생이후 이라크를 떠난 한국인은 모두 2백88명. 현지진출 상사직원과 가족,건설업체 직원가족,그리고 공관직원가족들이다.
쿠웨이트에서 시작돼 바그다드를 거쳐 이라크국경에서 요르단과 시리아로 뻗어지는 1번 고속도로중 바그다드진입로 10차선 23㎞ 구간을 맡아 공사하고 있는 아부그라이브 삼성종합건설 캠프를 찾았다.
지난 84년 11월 착공,지난해말 완공된 2억달러짜리의 이 공사장에는 우리 관리직ㆍ기능공 39명이 근무중이다. 이밖에도 삼성에서 고용한 태국인기능공 59명도 함께 있다.
1년간의 하자보수를 위해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 올 연말에는 이들도 모두 이라크를 떠나게 돼 있다.
전화연락을 받고 호텔까지 찾아온 김중식대리(31)의 안내로 티그리스강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시속 1백㎞로 질주해 갔다.
아직도 맑은 수질을 자랑하고 있는 유프라테스강과는 달리 티그리스강은 다소 혼탁한 물빛이었다.
티그리스강 주변에 산업시설과 주거지가 밀집돼 있어 공업폐수와 생활하수에 오염됐기 때문이라는 김대리의 설명이다.
김대리는 이번 사태가 발발한 직후 귀국길에 오른 아내와 아이들을 이라크­요르단 국경까지 바래다주고 쓸쓸히 캠프로 돌아와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본인은 지금이라도 출국할 수 있지만 남아 있는 근로자들을 생각해 계속 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주위에는 마치 남한강주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민물매운탕촌을 연상케하는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티그리스강 유역을 벗어나 대통령궁을 오른쪽으로 하고 좌회전해 곧장 달려가니 바그다드시내를 막 벗어난 지점에 낯익은 삼성표지와 함께 「아빠,오늘도 수고하셨어요」라고 쓴 한글간판이 나타났다. 땀젖은 삶의 현장에 온 것이다.
간판이 붙어 있는 샛길을 따라 약 1㎞쯤 들어가니 군데군데 목재ㆍ시멘트ㆍ철골등의 자재가 쌓여 있다. 그 사이로 우리 근로자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현지 채용의 이라크근로자들을 감독하고 있는 우리 근로자들의 모습이 매우 건강해 보였다.
김대리의 안내로 뉴 오피스라고 씌어진 현장사무소에 들어가니 소장인 박제건이사와 김진환ㆍ송영한차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시원한 냉방시설을 갖춘 박소장 사무실에서 인삼차를 마주 놓고 앉아 박소장은 서울소식부터 물었다. 『별일 없다』는 대답에 활짝 웃었다.
다음은 박소장과의 일문일답.
­서울과는 통신이 됩니까.
『아주 운이 좋으면 전화가 간혹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 편에 급히 서울 소식을 묻고 이쪽 상황을 설명합니다만 통신시설이 부족해 통화량이 매우 짧은 것이 아쉽습니다.』
­이곳 근로자들은 언제라도 출국할 수 있습니까.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경우 발주처의 동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항만공사와 고속도로 사업장의 경우 공사가 다 마무리됐습니다만 자재부족등으로 하자보수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최종 완공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근로자들의 생활상이나 사정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그동안 비축해둔 것이 좀 있어서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 그러나 9월1일부터 이라크 내국인에 대한 식량배급제가 실시되면 우리는 여기서 식량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아껴써야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6개월분이 비축돼 있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어려움은 없습니까.
『구체적인 행동제약이나 업무수행에 있어 문제점은 없습니다. 다만 갇혀 지내고 있다는 구속감 때문에 다소 심리적인 위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정부가 한국인에 대해서는 아주 호의적이기 때문에 신변위협은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외출을 전면 중지시키는 등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필요이상으로 이라크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금방 무슨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도하니까 서울의 가족들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가끔 통화가 되면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곤욕을 치르곤 합니다.
우리 근로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은 없지만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몰라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본국정부가 이제까지 잘해주었지만 앞으로도 이라크에 대한 지나친 강경책을 자제,한국근로자들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장기외출금지로 인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각종 체육대회와 바둑ㆍ장기대회등을 열어 우승자나 우승팀에는 상금을 주어 용돈에 보태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성현장답사에 이어 3백50명의 현대건설근로자들이 땀흘리고 있는 유프라테스강 발전소 건설현장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민감한 산업시설지역이기 때문에 이라크당국의 특별허가가 필요하다는 대사관측의 설명에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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