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질 한국열풍(북경으로 달린다: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경기장마다 한국광고 물결/모자부터 차량까지 “무상기증”/이미지 제고 호기… “과투자” 우려도/제11회 아시안게임 D­25
북경에는 이미 한국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개막이 다가올수록 더욱 뜨거운 열풍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 선수단ㆍ격려단ㆍ보도진 등 공식참가인원 약 2천명외에 4천여명의 참관단(관광객)이 황해를 건너갈 예정인데다 38개 아시안게임 회원국중에서 가장 많은 광고와 무상기증된 각종 물품들을 북경거리에 펼쳐놓고 있다.
한국이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경시 일원에 설치한 광고와 대회조직위등이 기증한 물품은 이미 세계경제의 초강대국으로 뻗어나간 일본을 상회하고 있다.
북경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북경시내 번화가나 유명 관광지,각종 운동경기장에 설치된 낯익은 한국기업 광고는 물론 현대ㆍ대우ㆍ기아ㆍ쌍용 등에서 제조한 한국산 승용차가 「기증」이라는 표지를 붙인 채 질주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될 것이다.
왕복 57편으로 결정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직항전세기를 타고 북경,혹은 천진공항에 도착하면 로비의 TV는 삼성집단(그룹)이 제공한 삼성제품 일색인데다 여행용 짐을 나르는 손수레에도 역시 삼성의 마크가 선명하다.
세관을 통과해 공항문을 나서면 눈익은 한국산 승용차를 쉽사리 볼수 있고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길에는 영문으로 된 선경과 코리아 에어라인(대한항공)의 대형 입간판이 돌출해 있다.
북경시의 중심부를 동ㆍ서로 관통하는 장안가에는 삼성물산ㆍ삼성전자ㆍ아시아나항공 등의 네온사인및 입간판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으며 천안문 부근과 북경의 명동격인 왕부정거리에는 대우와 럭키금성등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있다.
관광명소인 만리장성이나 아시아선수촌 부근에는 이들 그룹외에도 쌍용및 각종 한국산 스포츠용품 선전광고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개ㆍ폐회식이 거행될 메인스타디움인 공인체육장의 주전광판은 럭키금성이 제공한 것으로 거대한 「GOLD STAR…」 광고판이 그라운드를 압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경기장을 가도 한국기업의 광고가 물결치고 있다.
한국기업의 광고물결은 지난 7월 북경에서 개최됐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대회를 중계했던 TV를 지켜본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회의 담장광고 80%이상이 한국기업의 한글광고였다. 그만큼 한국기업의 광고경쟁이 치열하다.
한국기업이 무상기증한 4백여대의 각종 한국산 승용차는 북경공안경찰 승용차로도 쓰이며 주로 각국 귀빈과 대표단을 싣고 북경시내를 누빌 것이다.
이 차량들은 한국의 승용차 제조업체는 물론 포항제철ㆍ고려종합기획 등에서 기증한 것도 있으나 특히 서울에서 북경,또는 천진을 왕복하는 전세운항권을 따내려는 항공사의 과열경쟁때문에 대한항공이 1백55대,아시아나가 46대를 기증,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승용차를 무상 기증하게 됐다는 뒷얘기가 있다.
한국기업들간의 출혈경쟁은 두 항공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개막식에 입장한 관란객용 모자에서부터 선수촌내의 시계탑,대회진행요원과 현지 경찰의 승용차,심지어는 일부 외국선수단의 유니폼및 신발까지 한국기업이 지원하고 있다.
관계당국이 집계한 북경아시안게임관련 한국기업의 광고규모는 9백만달러(약 65억원)를 상회하고 있으며 무료기증한 승용차만도 4백만달러(약 29억원) 상당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한국기업의 물량공세는 기업,또는 상품의 홍보를 통한 비즈니스 확대외에도 한ㆍ중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국가적 선린의식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체들간의 대화부족으로 인한 출혈과 당경쟁과 이로인한 앞으로의 중국비지니스를 걱정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일본 유수상사의 북경지점장은 최근 한국기업의 모습은 과거 일본기업들의 실태를 보는 것 같다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일본도 80년 중반이전까지만해도 장안가를 비롯한 북경의 요지에 일본기업광고를 경쟁적으로 펼쳤으나 북경시민들의 피해의식에서 오는 반발과 서방각국의 비판등이 노골화되면서 이를 모두 철거한 경험이 있다.
일본기업들도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에 전기메이커등을 중심으로 적지않은 기증등 협력을 하고 있으나 중국국민들의 자존심이나 서방의 비판등을 의식하여 대대적 PR를 삼가,한국기업의 열화같은 PR공세와 대조를 이룬다.
한ㆍ일간의 입장이 같지는 않지만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슬기롭게 풀어야 할 숙제를 던지고 있다.
이밖에도 9월21일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인 참가국들의 문화ㆍ연예행사에는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손에 손잡고』를 불러 북경시민들에게도 익숙해진 코리아나가 다시 이곡을 직접 부르게 되어 중국속의 한국열기를 한층 북돋울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열풍의 핵심은 바로 6천여명에 이를 북경행 한국인들 자신이 될 것이다. 선수에서부터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과 언행이 어떤 색깔의 바람을 일으킬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북경=박병석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