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공해 추방에 발벗고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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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당산동 상아아파트주부 정대은 씨를 비롯한 이 아파트 13가구 주부들은 매주 화요일이면 산지에서 직거래된 무공해식품을 공급받는다.「함께 가는 생활 소비자협동조합」회원들인 이들은 번갈아 가며 대표를 정해 1주일치 먹을 무공해식품을 공동구입하고 공동 분배한다.
가격이 조금 비싼 듯하고 단체로 구입·분배하는 일이 성가실 때도 있지만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식품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야된다는 생각에서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
서울 남가좌동에 사는 주부 이정순씨(38)는 세탁용 가루비누나 주방용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힘이 좀 들긴 하지만 빨래는 빨래비누로, 설거지는 밀가루를 세제대신 사용한다. 3년 전 공해가 심각하다는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합성세제·산업폐수 등으로 농토가 황폐화되고 물·대기 오염물질·농작물 등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등 우리사회의 공해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공해로부터 파괴되는 우리환경을 지키겠다는 주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합성세제의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가연성·재활용·음식찌꺼기 세가지로 분리해 버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또 우리의 산하를 더럽히지 말자는 캠페인도 벌인다. 뿐만 아니라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산지와 직거래한 무공해식품을 구입하거나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자녀들을 공해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주부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80년대 중반이후부터. 발단은 유해 콩나물 파동·두부파동 등을 겪고 7∼8년 전부터 상품화된 무공해식품이 공급되면서 일부 계층이 이를 구입, 우리가족만은 공해로부터 보호돼야겠다는 일종의 가족 이기주의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공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높아지고 2∼3년 전부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아가야 된다는 취지를 표방한「한살림 소비자 협동조합」「정농회 소비자 협의회」「함께 가는 생활 소비자 협동조합」등이 생겨나면서 주부들의 공해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층 심각해졌다고 한 살림 소협의 윤희진 간사는 말한다.
현재 이 세 단체의 회원은 모두 주부로 4천여명 정도. 한 살림 소협은 전업주부들로 구성된 이사진으로 출발했으며 나머지 두 단체도 오로지 주부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북가좌동 한양아파트의 경우 두달 안에 6백40가구 중 46가구가「함께 가는 생협」에 가입할 정도로 주부들의 공해문제에 대한 관심은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주부 아카데미 협의회, 공해 추방운동 연합 여성위원회 등 6개 단체가 「수도물에 대한 안전대책을 세우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두홍보를 했으며, 대한 주부클럽 연합회가 주축이 된 쓰레기 분리수거 운동은 시작 5개월만에 4만 가구로 확산되는 등 주부들의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은「우리가족만」에서「우리모두가 함께 살아야 된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하고있다.
「함께 가는 생협」의 서우란 전무이사는『이 같은 경향은 현재로선 서울의 중산층에 국한돼있지만 머지않아 지방의 중소도시나 서민층에까지 파급될 것』이라고 전망하고『주부들의 이런 관심이 우리가족, 우리환경을 지킨다는 측면 외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눈을 뜨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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