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특별 취재팀 50일간 현장에 가다(38)|"해방 신학 못마땅" 로마 교황청서 견제|가톨릭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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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취재팀이 지난해말 로마 교황청에 의해 폐교된 브라질 레시페 신학교를 찾아간 것은 토요일인 지난 3월3일 오전 9시였다.
레시페 신학교를 찾은 것은 브라질 가톨릭 해방 신학의 본산이었던 이 신학교가 비록 교황청의 「해방 신학 견제 조치」로 폐쇄 당하긴 했지만 아직 무슨 여진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지난해부터 강경>
연건평 2백여평 남짓해 보이는 허름한 2층 건물의 교사는 고요하기만 했고 로마 가톨릭이 2천년 동안 굳혀온 전통의 틀들을 뛰쳐나와 해방 신학이라는 진보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폐교까지 당하고만 「패색」을 짙게 드리우고 있을 뿐이었다.
교문을 들어서니 웬 휠체어를 탄 할머니들과 봉사자들인 듯한 성한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발걸음을 떼어놓는 연로한 할머니들 몇 명이 교사 전면의 베란다식 시멘트 복도에 나와 산책을 하면서 햇볕을 쏘였다.
휴일 봉사 (브라질은 토요일 휴무)를 나왔다는 은행원인 로셀리아 멜로씨 (38·여)에게 물어봤더니 재학생 l백10명은 이웃 교구인 호앙 펫소 교구 신학교로 옮겨갔고 교사는 현재 레시페 교구 운영의 베난시오 양로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폐쇄 이유를 물으니 『해방 신학 때문이었다』고 대답하고는 일이 있어 가봐야겠다고 서둘러 교문을 나갔다.
그러나 취재팀은 또 다른 취재들을 통해 지난해부터 부쩍 강경해진 로마 교황청의 해방 신학 견제 배경에는 ▲동구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정세 변화 ▲일부 해방 신학 기초 공동체들의 신부 결혼 허용 요구 ▲정규 신학 교육 과정을 무시한 평신도 사제 양성 ▲선거에 의한 평신도 사제 선출로부터 시작되는 주교 선거제 주장 등과 같은 해방 신학 기초 공동체들의 「교회법 무시」가 깊숙히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교황청이 해방 신학을 견제하는 신학적 명분인 일부 해방 신학의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 투쟁과 폭력 혁명 수용에 대한 비판도 결코 가벼운 비중은 아니다.
교황청의 해방 신학 견제 강도가 높아진 배경을 리시아스 교수 (브라질 상파울루대 종교학)는 취재팀에 다음과 같이 분석해주었다.
『브라질 교회에 대한 교황청의 견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하면서부터 (78년) 시작됐다. 교황청은 사절단을 파견, 브라질 신학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계속했고 85년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에 대한 사문과 11개월간의 강론 금지 조치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취해진 것이다. 지난해의 레시페 신학교 폐쇄와 상파울루 교구 분할 역시 교황청의 브라질교회에 대한 일련의 견제 조처였다고 볼 수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어떤 면에서 볼 때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해방 신학이 주장하는 기초 공동체를 86년 승인한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교회 자체도 보수주의로 다시 회귀하고 있는데 이는 교황 바오로 2세가 폴란드 태생이라는 점에서 더욱 실감을 준다.』 리시아스 교수의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 할만한 또 하나의 사례는 교황 바오로 2세가 최근의 멕시코 방문 (5월6∼13일)에서 직접 행한 해방 신학 견제 발언들이다. 변증법적 사상가인 교황 바오로 2세는 지난 5월12일 9천여명의 주교·사제들이 참석한 멕시코시 산 크리스토발 대학 집회에서 『일부 해방 신학은 가톨릭 신앙과 교회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단호히 경고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성직자들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 명백하게 실패한 모델에 기초한 빠른 해결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또 『일부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주교의 명령에 복종치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교회 원칙들을 부식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보수주의로 회귀 지난해 3월의 상파울루 교구 분할과 뒤이은 레시페 신학교 폐쇄는 전례 없는 교황청의 강력한 조치였다.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상파울루 교구를 4개로 분할한 것은 비대해진 교구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취해진 행정적 조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이들 조치를 브라질 해방 신학의 실천적 지주이며 국제적 거물인 상파울루 교구장 아른스 추기경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해방 신학의 원천을 봉쇄키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분할된 교구장에는 모두 보수적인 주교들이 임명됐다.
특히 레시페 신학교 폐쇄는 이 신학교가 학생들에게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책들을 읽게 하고 졸업생들은 재학 시절처럼 신부복 대신 티셔츠와 샌들 차림으로 도시 빈민가와 농촌 등지로 퍼져나가 해방 신학 기초 공동체들에 투신했다는 사실에서 폐쇄 배경을 직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제 양성에 실패>
해방 신학이 개발한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새로운 교회 형태인 기초 공동체들은 도시 빈민과 농·어촌 원주민 사목에서 전래의 민중 문화 전통을 재해석하는 가운데 「사제 결혼」과 「평신도 성직자」 양성이 교회 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됐다.
기초 공동체 투신 성직자들의 이러한 확신은 원주민 출신 사세 양성의 실패에 대한 반성에시부터 잉태했다.
엄청난 돈과 세월을 투자하고도 원주민 성직자 양성에 실패한 중요 원인은 「신학 교육과정」이 원주민 문화를 소외시키는데서 오는 단절과 좌절 때문이라는게 제2차 메데인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CELAM·68년)문서들의 분석이었다.
멕시코 야퀴 부족 출신의 한 원주민 사제는 『전통적인 신학교들이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사례들은 모두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문화를 버리고 우리가 인디오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우리 인디오들은 무력감과 위축감을 느꼈다』고 신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해방 신학 기초 공동체들은 전통적인 신학 교육 과정에 대한 이같은 비판을 수용, 「평신도 목회자」 (브라질) 「말씀의 대표자」 (온두라스)·「회중의 의장」(도미니카) 등으로 불리는 평신도 사제를 구성원들의 투표로 선출, 교회 의식과 영세 성사 등을 집전케 했다.
기초 공동체의 평신도 사제들은 학력에서는 초등 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지만 모두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갖추었고 지역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들로 주교들이 사제들에게 요구하는 품성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사제의 결혼 문제는 페루의 아이마라 부족의 경우 그들이 아티리라고 부르는 성직자는 반드시 결혼을 해 아내에게 충직하고 관대해야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원주민들의 사목을 위해서는 오히려 피동적으로라도 사제의 결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 허용 고려>
78년 교황 선거 때 강력한 후보 물망에까지 올랐던 브라질 알로이시오 로르샤이데르 추기경은 『우린 전통적인 사제 독신 제도의 폐지를 옹호하진 않지만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사제 권능을 행사하는 경우에 당면해 별도의 선택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선언, 원주민 사목의 기초 공동체 투신 신부들의 결혼 허용을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페루의 호세 담메르트 벨리도 주교도 이와 똑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정식 신학 교육 과정을 밟지 않은 평신도 성직자 양성을 옹호하고 나선 대표적인 고위 성직자로는 베르나르디노 마차젤라 (온두라스)·로퀘 아다메스 (도미니카)·돔티아고 클로인주교 (브라질)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 주교들은 평신도 사제가 하느님 백성들 (기초 공동체 구성원)을 더 잘 이해하며 그들 사목에 전통적인 사제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클로인 주교는 『교회법의 기능은 교회의 복음화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며 그 반대가 될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교회법이 절대적인 장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방 신학을 지지하는 이같은 진보적인 주교들의 주장과 요구는 로마 가톨릭의 존립을 위협하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고 교황청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 일부 급진 과격파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이 변방 교회 (Marginal Church)로서 독립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대두했다.
어쨌든 보프 신부 사문이나 최근 교황청이 취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해방 신학에 대한 일련의 강력한 견제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뒤얽혀있는 로마 가톨릭의 고민스러운 한 단면이기도 한 것이다. 글 이은윤 특집 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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