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 1편의 연시조 '광릉에서'는 세조가 잠든 경기도 남양주 광릉에서의 감회를 노래한 것이다. 첫째 수는 수목 우거진 풍광을 순순한 묏등을 향해 경배하듯이 그려냈고, 둘째 수에선 대군으로 머물러야 할 사람이 인륜을 저버리고 왕이 된 사연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산에 찬 풀과 나무야' 옳고 그름 가리지 않겠지만 세인의 평가에서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에 대한 원망이 없을 수 없다. 셋째 수에서는 '어진 신하도 쉬 오가지 못한' 단종의 유배지 영월 땅 두견이가 광릉 숲에 와 풀어놓는 구슬픈 소리를 듣는다.
이 짧은 시조에 오백 년 조선의 가장 슬픈 역사가 들어 있다. 세조의 명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받들고 갔던 왕방연의 시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자시니/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와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의 '간밤에 울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내거다/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저 물이 거슬러 흐르과저 나도 울어 예리라'도 이 슬픈 역사가 낳은 시조다.
김동리 선생을 비롯하여 이광수.김소월.양주동.이희승.서정주 등 근현대 작가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창작했거니와, 무엇보다 시와 시조를 갈라 세우지 않았다. 미당 또한 현대 시조 중흥을 '비는 마음'에 담아 2수의 연시조로 노래한 바 있다.
'버려둔 곳 흙담 쌓고 아궁이도 손보고/동으로 창을 내서 아침햇빛 오게 하고/우리도 그 빛 사이를 새눈 뜨고 섰나니//해여 해여 머슴갔다 겨우 풀려오는 해여/5만원쯤 새경받아 손에 들고 오는 해여/우리들 차마 못본 곳 그대 살펴 일르소.'
그러나 60년대 이후 현대문학이 시조를 시문학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소홀하면서 시조는 빛을 잃게 되었다. 배우지 못했기에 일선 학교의 선생님도 가르칠 수 없다. 우리나라 정형시는 교과서에 없다. 학생들은 질문한다. 아직도 고시조를 쓰느냐고. 학생들은 반문한다. 왜 학교에서 현대시조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홍성란 <시조시인>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