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무산 예정된 시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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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내교통에 큰 지장을 주기때문에 학생들의 도보행진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과 같이 갈 수 없다면 우리 대표단도 떠날 수 없습니다.』
광복절인 15일 오전11시 연세대 정문앞.
판문점에서 열리기로 된 범민족대회 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떠나려던 대표단 일행과 서대문경찰서장 사이에 「학생들의 동참」 문제를 놓고 입씨름이 오가고 있었다. 한 대표가 『당신도 반통일세력』이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얼굴이 붉어진 경찰서장은 『사전신고된 세대의 버스외에는 절대 출발불가』의 입장을 고수,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곧 이어 학생들의 쇠파이프세례가 전경들의 헬밋위에 가해졌다. 또 기다렸다는 듯 다연발최루탄이 학생들에게 무차별 발사됐다. 「혹시나」하며 국민의 관심을 끌어왔던 「반쪽 범민족대회」가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격렬한 시위로 변한 것이다.
오후2시 「경찰원천봉쇄 규탄집회」를 가진 대회추진본부측은 「학생들의 지나친 탈진」을 이유로 17일까지 예정되었던 모든 행사를 이날로 모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오후8시 연세대학생회관 부근에는 학생들의 집회ㆍ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진 가운데 「적들의 전리품」이라는 푯말아래 전경헬밋 두개와 방패 한개가 마치 이번 범민족대회의 유일한 성과인양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정부에서 7ㆍ20남북대교류선언을 했을때만 해도 혹시 우리 수경이가 석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임수경양의 어머니 김정은씨(55)는 어둠이 깔린 교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대회는 무산되었지만 뜨거운 조국통일의 염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북미주해외동포대표로 참석한 노소윤양(25ㆍ미남가주대학원)은 애써 아쉬운 느낌을 감추는 듯했다.
13일부터 3일동안 통일에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연세대캠퍼스.
학생ㆍ대표단이 모두 철수한뒤 어둠과 고요가 깔리는 가운데 한 대학생의 『통일은 결코 한여름밤의 꿈일 수 없다』라는 허공을 향한 외침이 가슴아리게 들려왔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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