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날리고 빚더미에… 바닥 모르는 침체증시 갖가지 후유증 앓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우리사주」 매입자금 못갚아 퇴직도 못해/고객 원금 반환요구에 정신분열 직원도/흥청대던 증권가 주변 유흥업소도 한산
장기침체의 늪에서 허덕거리는 주가가 중동사태까지 겹쳐 6백30대로 곤두박질하는 등 밑바닥을 헤매자 증권사직원ㆍ고객,증권가 유흥업소들이 파행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사주」를 사들이느라 빌린 회사돈을 갚지 못해 일부 증권사 여직원들이 결혼을 위한 퇴직을 못하는가 하면 작게는 수억원,많게는 수십억원까지 「큰손ㆍ작은손」 고객을 끌어들여 대리투자를 했던 지점장ㆍ영업직원들이 고객의 원금 반환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분열증세까지 일으키고 있다.
또 무리한 신용융자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구좌가 「빈깡통」이 되어버린 일부 소액투자자들은 이혼 등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고 있고 1년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증권가주변 유흥업소는 폐업직전에 몰렸다.
모증권 명동지점 이모양(25)은 9월초 결혼을 앞두고도 퇴직을 못하고 있다.
84년 입사한 이양은 그동안 배정받은 우리사주 5천주중 유상증자 3천주(평균 3만원)를 사느라 회사돈 8천만원을 빌렸다.
89년4월 주가가 1천고지를 돌파,증권주가 5만원대를 웃돌아 「혼수장만」의 꿈에 부풀었던 이양은 지금 1만3천원으로 떨어진 주가를 바라보며 회사빚을 갚을 생각이 막막하다.
이양은 『한때 증권사 여직원은 「억대샐러리걸」로 불렸는데 지금은 우리사주가 퇴직도 못하게 하는 「노비문서」로 전락했다』며 『헤픈 씀씀이에 이미 빠져버린 일부 여직원이 돈을 벌러 유흥가로 진출하는 경우도 보았다』고 말했다.
H증권 강남의 모지점 영업담당 김모씨(30)는 매월 5억∼10억원의 약정고를 채우기위해 고객 20여명의 「대리투자」를 해 한창 좋을 때는 부수입이 월급의 2∼3배에 달했으나 주가폭락으로 「깡통구좌」(원금까지 날린 경우)가 되자 고객들이 『원금을 물어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고율의 사채까지 끌어들여 갚다 감당하지 못해 정신분열증세를 일으켜 치료를 받고있다.
강남지역의 모증권지점 간부 박모씨(43)는 『매월 50억원의 약정고부담 때문에 큰손 30여명의 구좌를 관리해오다 고객의 투자금 보상요구 때문에 이달초 가락동 52평아파트를 처분한후 변두리전세로 갔다』며 『최근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또 한편으론 감원공포에 시달리지만 정작 「탈출」을 원하는 증권사 직원들은 자기가 관리한 고객이 회사에서 빌린 돈이 남아 있으면 마음대로 퇴직할 수도 없다.
일부 증권사 감사실은 금융사고를 막기위해 직원의 재정보증인을 확인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직원들의 주머니가 텅비자 명동증권빌딩(구 증권거래소건물)주변과 강남ㆍ여의도증권가 일대의 유흥업소는 장사가 안돼 울상이다.
여의도 J룸살롱 마담 정모씨(35)는 『매출의 30∼40%가 날아가 버렸다』고 했고 D증권 압구정동지점 직원 유모씨(32)는 『예전엔 직원들이 명함만 가지고도 1차 룸살롱,2차 요정에서 외상으로 마셨는데 요즘은 선불을 내야할 판』이라고 한숨을 지었다.<김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