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하구는 「황금의 삼각주」|과기원 정성철 해양경제연구실장 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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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동북아 국가간의 경제협력문제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 만의 현상이 아니다.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동북아지역의 긴장완화, 그리고 날로 블록화의 경향을 띠고 있는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동북아지역 국가간의 경제협력은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이 견해인 것 같다.
그러나 국내정치·경제체제가 서로 다르고 국교관계도 맺어져 있지 않은 국가간의 협력이 지리적인 인접성만으로 가능할 것이냐 하는데는 의문이 없지도 않다.
지난 7월 15일부터 4일간 중국 장춘에서「동북아지역의 경제발전에 관한 학술회의」가 열려 이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토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는 동북아의 모든 국가-남·북한, 중국, 소련, 일본, 몽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역내의 경제·과학협력 및 경제개발을 위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
동북아 국가간의 경제협력문제에 대해 과거에는 회의적이었으나 최근 이 지역에서 일고 있는 개혁과 화해의 움직임, 특히 한-중, 한-소간의 관계개선, 남북한간의 대화 재개, 일-한간의 관계개선의 조짐 등 정치적인 환경이 크게 좋아지고 있고, 또한 이 지역 각국은 경제적으로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협력을 통해 모든 나라가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가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은 세계경제의 블록화에 따라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 필요할 것이며 북한·중국·소련은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체제상의 제약이 있기는 하나 호혜·개방·점진주의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노력할 때 경제협력이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회의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여건 하에서 단순한 교역형태의 경제협력이 지역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없기 때문에 동북아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경제개발을 위한 지역협력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지역내의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특히 중국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중국 측은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상수송이 용이한 두만강유역을 자유무역항·경제특구 등으로 개발함으로써 북한·소련 등 인접국가의 경제발전은 물론, 일본·한국의 수출·투자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두만강하류의 혼춘 지역에 있는 방천마을을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해 동북아지역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북한의 노동력,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동원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일본학자들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일본이 이 지역개발의 중재자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련의 경우 약간 다른 입장이지만 동북아국가의 일원으로서 경제협력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도 폐쇄되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개방해야 하며, 완전한 시장경제체제가 수립되어야 함은 물론, 소련 극동지역이 자치권을 가져야할 것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북한은 한편 동북아의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남북철도연결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로서도 두만강유역에는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활동적이기 때문에 다른 여건이 갖추어진다면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제안으로 평가했다.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는 경제협력의 필요성이나 방식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사회제도적 장치나 교통·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의 미비, 국제거래를 뒷받침할 화폐·금융제도의 문제점 등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다.
나를 비롯한 한국 측 참석자들은 이 회의에서 논의된 방안이 성공을 거두어 두만강을 기점으로 개방의 물결이 남하해 통일을 앞당겨주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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