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문화(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바캉스철을 맞아 전국의 산과 바다가 끝없이 밀어닥치는 행락객들의 무질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TV화면에 비친 지난 일요일의 해운대 해수욕장은 1백만명의 피서인파가 몰려 마치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발디딜 틈도 없이 늘어선 비치파라솔과 점포들은 모래사장을 완전히 뒤덮었고 비취빛의 바닷물은 그야말로 흙탕물처럼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그런 아수라장은 산과 계곡도 마찬가지였다.
찜통을 방불케 하는 불볕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를 찾는 인파가 많은 것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실종된 질서의식이 문제다.
어느 해수욕장에서는 모래사장에 마구 버린 깡통뚜껑에 어린이가 발을 베였는가 하면,어느 해수욕장의 취사장에서는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그대로 버려 식수와 하수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디 그 뿐인가. 피서지마다 바가지요금이 판을 치고 산더미같은 쓰레기는 뙤약볕 밑에서 푹푹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더구나 근년들어 부쩍 늘어난 이른바 「오토 바캉스」의 여파로 피서지의 교통질서 또한 말이 아니었다. 행인이 붐비는 길 가운데다가 버젓이 주차한 얌체족은 물론이고 잔디밭등 보호해야 할 시설에 차를 몰아넣고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을 하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우리의 바캉스 문화가 아직도 낙제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바캉스란 그동안 땀흘리며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잠시 일상을 떠나서 자연의 품에 안겨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바캉스는 다음 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이지 결코 진탕 마시고 떠들고 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바캉스는 놀자판의 바캉스로 변질돼 가고 있다.
남이 보거나 말거나 서너명만 모여 앉았다 하면 고스톱판이고 술판이며 노래판이다.
물론 피서지의 시설이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만 있다면야 새삼 문제가 될 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시설을 이용하여 서로가 유쾌한 마음으로 바캉스를 보내려면 우선 자기부터 질서를 지켜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