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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본좌가 남긴 흔적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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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회부 기자의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요즘 네티즌들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당혹감마저 들었다. 일부에선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을 시도했다. 수천 개의 댓글은 대부분이 그를 옹호하는 내용이었고, 경찰의 수사를 지지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년 반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번 돈이 5000만원에 불과한 것을 볼 때 김본좌야말로 현실에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현대판 성자이며, 음지의 슈바이처"라는 댓글은 1만 건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부 네티즌은 글 앞에 근조(謹弔)를 뜻하는 '▶◀'표시를 하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황당하고 유치한 논리이지만 '김본좌 복음'과 '김본좌 계시록'까지 등장한 것이다. 성경을 패러디한 본좌복음은 인터넷상에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가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김본좌께서 경찰차에 오르시며 '너희들 중에 야동(야한 동영상)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하시니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도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더라"(본좌복음 연행편) "김본좌께서 잠시 풀려나시니 전국의 대한남아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매, 그 눈물로 한강이 범람하였더라, 환호하는 건아들에게 본좌께서 말하시길 '더 이상 슬퍼 마라. 너희들 욕정이 풀린다면 이 한 몸 부서지도록 업로드할 것이다"(본좌복음 석방편)

물론 일각에서는 네티즌들의 '일탈적인 행동'이 음란물에 대한 청소년들의 호기심만 부추기는 역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지만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트즌들은 왜 김본좌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김본좌 사건이 남긴 흔적의 이면에 담긴 사회행동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아무 생각 없는 10대와 20대 네티즌들이 댓글을 다는 것일 뿐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내팽개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했던 것처럼 놀이상황과 영웅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성적 욕구 분출을 억압하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프로이드식 해석이 가능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기존의 사회질서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일까.

한 대학교수는 "뉴스에 재미 삼아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의 놀이문화이며 영웅이 없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티즌들이 권위적인 성경을 패러디한 것은 모든 사회적 권위에 대한 반발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은 포르노물이라는 비밀스러운 매개체를 통해 김본좌를 위한 안타까움이 아닌 나를 위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며, 네티즌들의 집단적인 유희(遊戱)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젊은 구성원들이 현재 질서체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를 탈출하기 위한 비상구로 김본좌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김본좌가 남긴 흔적이 인터넷이란 놀이공간에서 어떤 형태로 진화될지도 관심거리다.

박재현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