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서 울려퍼진 무공해 선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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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1일 오후 2시 제주도 북제주군 성산포에서 페리호를 타고 15분 걸려 도착한 우도(牛島). 공중에서 보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선착장에서 관광객.연주자를 태운 미니버스가 5분 만에 우도봉 아래 영일동 검멀레 해안에 도착했다. 검정 모래밭과 바위를 지나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을 통과하니 넓은 동굴이 나왔다. '고래 콧구멍'으로도 불리는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동굴음악회의 출생지다. 입구에는 '2006 우도 동굴음악회-바다동굴로의 초대'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연주자 대기실도, 변변한 무대도 없었지만 조물주가 빚어놓은 천혜의 동굴은 그 자체가 웅장한 악기였다. 관광객 250여 명이 아직 바닷물이 채 빠지지 않은 바위 위에 앉아 무공해 선율을 즐겼다. 프라임 타악기 앙상블(리더 김상훈)의 신나는 리듬에 이어 C&C 체임버 앙상블(지휘 이동호)의 무대가 펼쳐졌다. 연주자가 동굴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곁들인 '고래들의 합창'(이동호 작곡)을 듣노라니 태풍이 불면 동굴 입구에서 고래 울음소리가 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타악기는 물론 호른.트롬본.튜바 등 저음 악기가 잘 울렸다.

무대는 조촐했으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와 협주곡도 연주됐다. 소프라노 신지화(이화여대 교수), 테너 현행복, 베이스 박근표씨 등 제주 출신 음악인과 호른 주자 김영률(서울대 교수)씨가 함께했다.

10년째 행사를 이끌어온 현행복 동굴소리연구회 대표는"동굴 내부는 북제주군 만장굴이 가장 넓지만 어둡고 꽉 막힌 기분"이라며 "동안경굴은 바다를 향해 열려있어 공기순환이 좋고 낙석 위험도 없어 음악회 열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언제든 음악회를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동굴에 물이 빠지는 날은 보름에 하루꼴. 1년 중 10월 하순에 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 음악회 날짜도 그 무렵의 물때에 맞춰 정한다.

우도(북제주군)=글.사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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