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어린이 한문 교실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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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교장 선생님을 지내다 정년 퇴임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가르치는 한문·교양·예절 강좌가 삼복 더위 속에서 진행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시내 17개 구청별로 운영되고 있는 「할아버지 선생님 여름방학 어린이 한문 교실」은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한획 한획 그리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감 어린 백발 선생님들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 어린 마음에 효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것도 이 강좌의 좋은 효과다.
지난 23일 오전 10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강동 구민 회관 1층 강의실에서는 1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할아버지 선생님 손창조 옹 (69)의 가르침에 따라 허공에 팔을 뻗어 한자 쓰기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한자 교육 외에 손옹이 들려준 이야기는 「고려장」으로 기노 전설 (노인을 버리는 전설)에 얽힌 것.
할아버지를 산 속에 버리러 지게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간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를 버릴 때 쓰겠다』며 지게를 챙겨 가져오려 하자 아버지가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시고 왔다는 잘 알려진 얘기였다.
손옹은 지난 87년 전북 정읍 보림 국민학교장 재직을 끝으로 정년 퇴직한 뒤 서울로 와 한문 교실을 맡고 있다. 손 옹이 이야기를 끝마친 뒤 『어머님의 은혜는 무엇과 같이 높고 또 깊은가』라고 묻자 어린이들은 『하늘과 바다요』라며 일제히 대답했다.
그런 뒤 할아버지 선생님과 학생들은 『어머님 은혜』를 목청껏 노래 불렀다.
2시간의 강의가 끝난 뒤 남·여동생 둘과 함께 왔던 박지혜양 (10·명일 국교 5년)은 『고려장 얘기를 듣고 보니 부모님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평소 한자를 30자 정도 알고 있었다는 박상덕 군 (11·둔촌 국교 5년)은 『한문을 좀더 열심히 배우고 전파 수리점을 하시는 아버지를 더 많이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3시부터 약40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공부방에서 있은 한문 교실 강좌에서는 할머니 선생님 권희동 여사 (69·전 귀산국 교장)가 신찬자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권 여사는 한자 공부에서는 『필순이 제일 중요하다』며 학생들이 틀리게 쓸 경우 돌아다니며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권 여사 역시 「고려장」 얘기를 했으나 손옹의 얘기 내용과는 좀 달랐다.
늙은 아버지를 산 속에 버렸지만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 양식을 계속 가져다주곤 했던 한 고관이 중국 사신이 낸 어려운 수수께끼를 아버지의 지혜를 빌려 풀 수 있었다는 내용. 가정이나 사회에 경험 많은「어른」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 얘기는 자초지종을 안 임금이 고려장을 폐지한 것으로 끝났다.
한편 맹자의 「군자삼락」에서 따 이름을 지은 사단법인 대한 삼락회 회원인 할아버지·할머니 선생님들은 교직 생활 퇴직 후 오랜만에 학생들과 접하고 교육 경험을 살릴 수 있어 참으로 보람차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문 교실은 서울시와 각 구청이 겨냥한 노인 복지와 청소년 교육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두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들 퇴직 교장 선생님들의 강좌는 여름 방학중에만 진행되는데 수강료는 없고 서울시청 및 각 구청 가정 복지과가 사업을 맡아하고 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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