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제 재조명」… 러스크 전 미국무 회고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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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8선은 영구 경계선 아니었다”/중공군 격멸가능 맥아더 호언/북경에 핵폭격 트루먼이 반대
다음은 러스크 전 미국무장관의 회고록에서 한국문제와 관련돼 새롭게 조명을 받아야 될 대목을 발췌한 것이다.<편집자주>
◇38선의 아이러니=우리는 38선을 영구적인 경계선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 문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놀랐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45년 어느 저녁 늦은 시각에 나와 또다른 젊은 대령(본스틸 전 유엔군사령관)이 국방부에서 동아시아 지도를 놓고 급히 획정했던 그 38선이 대대적인 공방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대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38선은 이렇게 획정된 것이다.
◇북한군의 승전가능성과 유엔군 참전=미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 소수의 미군들이 한국전장에 나타났을 때 북한군은 약 10일간 공세를 중단했다.
아마 평양,모스크바,북경이 다음에 어떻게 해야될지를 협의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는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만약 북한이 공세를 계속했더라면 우리를 한반도 밖으로 몰아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을 중단시킬 충분한 군대를 한반도에 상륙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침공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었을 때 중국의 안전보장이사회 자리문제로 소련은 안보리 참석을 보이콧하고 있었다. 소련은 한국참전 결의안을 거부하러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유엔기가 한국전에서 나부끼도록 허용한 셈이 되었다.
◇북한과 중공의 사전모의=나는 북한이 소련하고만 남침계획을 협의했다고 보지 않는다. 전투중 유엔군이 수천명의 중공군 포로들을 잡았을때 신문결과 남침이 있기 수개월전에 이미 중공은 한국사람이거나 한국계의 중공군인들을 샅샅이 찾아 북한군에 통합시켰음이 드러났다.
이는 북경이 남침을 공모했거나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50년 10월 웨이크섬에서 트루먼­맥아더 회담이 있었을 때 모두가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으리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맥아더는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면 그냥 쓸어버릴 것이라고 호언하면서 『전사상 가장 큰 살육이 될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트루먼의 원자탄 사용계획=어떤 사람들은 46년 1월 소련 아제르바이잔문제가 유엔안보리에 상정된 시점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만약 소련이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철수하지 않으면 원자탄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나는 다음 몇가지 구체적인 이유로 그 주장을 의심한다. 첫째,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자탄을 투하했을 때 그것이 우리가 남겨두었던 유일한 원자탄이었다.
46년초에 가서야 우리는 1∼2개의 원자탄을 더 제조했다.
첩보를 통해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 스탈린이 원자탄사용에 위협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전쟁중 트루먼의 군사보좌관들은 중공의 참전과 관련,한국전에 영향력을 행사할 유일한 전략은 중공의 도시들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제안은 트루먼이 그 길을 택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결코 심각하게 검토되지는 않았다.
◇맥아더 해임=중공이 참전한 이후에도 나는 한국전에 충분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쟁을 중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맥아더장군은 그가 가진 비관적 태도를 감안,유엔군 사령관에서 해임돼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회의석상에서 트루먼은 참모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나는 미국의 장군들은 국군통수권자(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헌법상의 이유로 맥아더를 해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트루먼은 나와 브래들리 장군을 옆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맥아더 해임서 초안을 작성했다.
◇푸에블로호사건=68년 1월 푸에블로호가 피납된 후 한때 북한은 우리 승무원들을 전범으로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위협했다. 우리는 강력히 반대했으며 소련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충고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왜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는지 몰랐지만 미국이 월남에 발이 묶여 있다고 보고 남한에 대해 도발을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푸에블로호 나포 불과 이틀전에 청와대 기습사건이 일어났으며 한국정부는 이 사건에 매우 분노해 우리는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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