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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프리미어리그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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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작 북의 핵실험보다 그 대응이 더 소란스러운 요즘이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우리의 대응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마이너리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 좀 크게 뜨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배우자.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다. 프리미어리그를 최고로 만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펼치는 '창의적 플레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려면 비유럽권 선수의 경우엔 그가 속한 국가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0위 이내여야 하고 최근 2년간 치른 A매치 경기에 75% 이상 출전해야만 한다. 이렇게 걸러져 전 세계에서 뽑힌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잠재역량을 총동원해 최고의 창의적 플레이를 펼친다.

둘째, '창의적인 고객만족과 창조적인 중계 기법, 그리고 창발적인 마케팅'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축구경기장은 골대와 관중석이 붙어있다 싶을 만큼 가까워 관중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경기를 관람한다. 뛰는 선수와 보는 관중이 하나로 어우러져 열광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구조를 갖춘 셈이다.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실황중계도 단연 세계 최고다. 선수들의 허벅지 근육을 살려낼 정도로 밀착된 카메라와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잡는 다양한 각도의 창의적인 카메라 앵글은 경기장의 박진감과 흥분을 있는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줘 최고의 고객만족을 안겨준다. 더불어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 다투어 프리미어리그의 클럽들을 후원하려 줄 설 만큼 프리미어리그의 '이야기를 파는' 창발적 마케팅은 가위 독보적이다. 삼류는 제품을 팔고, 이류는 지식을 팔고, 일류는 감동을 판다. 프리미어리그는 축구를 통해 극적 감동을 파는 초일류다.

셋째, 지면 퇴출되는 최고들만의 무한경쟁이다. 정규시즌이 끝나면 프리미어리그의 20개 클럽 중 하위 3개 클럽은 2부 리그로 강등된다. 동시에 2부 리그의 1, 2위 클럽과 나머지 3, 4, 5, 6위 클럽에서 다시 가려낸 한 개 클럽 등 모두 세 클럽이 프리미어리그로 진입한다. 바로 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수들은 창의적인 플레이에 몰두하고, 감독은 창발적인 작전을 짜내며, 구단은 창조적인 경영에 매진한다. 바로 이 창의.창발.창조야말로 프리미어리그를 최고로 만든 핵심 가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정부는 아무리 봐도 마이너리거다. 북핵 위기의 와중에 김병준.전효숙을 반복해서 고집하는 고장난 레코드 같은 인사 행태만 봐도 안다. 제발 자기 동네 선수만 고집하지 말고 눈 크게 뜨고 더 넓게 찾아봐라. 내정이든 외교든 최고의 플레이어를 다시 찾아야 한다.

관중이요 고객인 국민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안심시키고 만족시키며 감동시킬 궁리를 해봐라. 국민과 불화하며 '배고픈' 문제보다 '배 아픈' 문제만 파헤치는 '386 인식틀'을 벗어던져라. 유엔 안보리 결의에 협조하자는 당연한 주장을 '내정 간섭' 운운하고 '자기운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전쟁하자는 거냐?"고 되레 목청 돋우기에 급급한 허울 좋은 자주는 집어치우고 실용으로 가자. 국민이 원하는 바다.

혹독한 경쟁이 창의성을 낳고, 그것이 프리미어리그의 도약을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말로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결국엔 경쟁의 싹을 아예 잘라버렸다. 그래서 투자도, 성장도, 일자리도 말라버렸다.

대한민국이란 구단은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설 만한 잠재역량이 있건만 마이너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란 감독과 그가 뽑은 선수들이 마이너리거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의 관중이 안타까워 분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