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거짓말에 무감각한 현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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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거짓말로 먹고사는 변호사가 어느날 갑자기 진실만 말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플래처 리드(짐 캐리 분)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변호사다. 그는 또 일 때문에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항상 변명만 한다. 거짓말 때문에 그는 이미 아내와 아들 맥스에게 신용을 잃었다.

플래처는 아들의 생일 파티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한다. 아들은 기대에 부풀어 친구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고,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아빠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실망한 아들은 생일 소원으로 아빠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게 해달라고 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플래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룻동안 정직한 말만 하면서 생활이 뒤죽박죽된다. 그러다가 법정에서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상대편 의뢰인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미국의 코미디 영화 '라이어 라이어(Liar Liar.감독 톰 새디악)'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97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번쯤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제를 하지 않고 "공책을 가져오지 않았다"거나 늦잠을 자 지각하고도 "차가 막혀 늦었다"고 둘러대는 것처럼 일상 속의 거짓말들이다.

이런 거짓말은 현대인의 삶에서 필수 요소처럼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이 가장 무서워하는 낙인이자 최상급의 욕은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번 낙인 찍히면 공직생활은 끝장이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물러난 미국의 37대 닉슨 대통령(재임 1969~74)이 대표적인 경우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72년 6월 대통령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몰래 들어가 도청장치를 하려다 들킨 사건이다. 애초에 닉슨은 무관함을 주장했으나 나중에 들통났다. 닉슨도 처음엔 궁지에 몰리자 우리나라 정치인들처럼 "아니다" 또는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결국 탄핵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영화에서처럼 사회 지도층에 단 하루라도 거짓말을 못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건다면 어떻게 될까. 현대인들은 거짓말 없이 정말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일까.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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