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동 토지사건 국가 승소|8순 할아버지 집념의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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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월급 한푼없이 80여 평생 중 80년이란 긴 시간을 바쳐 열과 성을 다했던 일이 결실을 보게돼 4만여 주민들이 강제 퇴거의 공포에서 벗어나「내 땅」에서 발뻗고 살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 구로동일대 11만여평의 땅을 둘러싸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국가를 대신해 사실상 사건을 도맡아 25년간 끌어온 법정투쟁에서 최종 승소한「구로동 대지 소송대책위」 위원장 노유복씨(84·중앙일보 7월21일자 19면).
노씨가 이 소송에 말려들기 시작한 것은 65년1월. 이 일대 소유권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이전 등기 청구 소송을 내 l심에서 승소, 노씨 등 주민들이 졸지에 길거리로 내 몰리면서부터.
『오갈데 없는 영세민이 대부분인데다 국가로부터 돈주고 불하받은 내 땅을 되찾겠다는 것은 당연했지요』
61년부터 이곳에 정착한 노씨는 곧 대책위를 구성,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청와대 등 각계에 진정서·탄원서 등을 보내며 대책을 호소했으나 사태는 계속 악화, 68년 결국 국가가 패소하고 말았다.
『문제의 토지는 국가 불하 이전에는 군용지로 농지분배 대상이 아니었는데 관계 공무원과 경작자들이 6·25전쟁 후 어수선한 틈을 타 서류를 위조, 농지 개혁으로 분배받은 것처럼 꾸민 것입니다』노씨 등은 61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도시영세민·피난민 등을 위해만든 이 일대 집단촌락으로 이주, 국가로부터 평당 1천원에 불하받았다.
노씨는 주민들을 규합, 항의 가두시위를 벌이는 한편 정부의 재심 청구와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노씨는 자비를 털어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서류 등을 정부에 제출, 검찰은 70년4월 토지관계서류가 위조된 것임을 밝혀내고 관계 공무원 등을 구속했다.
『소송 뒷바라지에 집까지 날리고 난곡 산동네로 옮겨갈 때는 모두 내팽개치고 싶었어요』
이 사건에 파묻히면서 청소 용역업을 그만두고 모아 두었던 돈까지 다 써버려 부인 전봉덕씨(77)가 보따리 행상으로 나섰다.
구로동을 떠나며 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으나 소송의 전말을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노씨 밖에 없다는 국가와 주민들의 만류로 노씨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됐다.
『한배에 탄 주민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거들어주는 사람 없는 고독한 행진이었습니다』
84년 관계공무원들이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재심사건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됐고 20일 국가승소로 확정, 여씨의 싸움도 마무리됐다.『그동안 수백차례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렸지요』방안을 온통 소송 관계서류로 메운채 공식학력이라곤 전혀 없는「법률가」노씨가 이 복잡한 소송을 떠맡을 수 있었던 것은 월남이전 북한에서 평양시 재판소에서 3년간 일한 경험 덕택.
1907년 평남 평원군 한천면에서 태어난 노씨는 독학으로 일제시대 지방주사로 일하다 6.25가 터지면서 월남, 60년까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해왔었다.
고령에도 불구, 소송번호·관련자 이름·토지면적 등을 한자도 틀리지 않고 줄줄 외어대는 노씨는 승소했는데도 누구 하나 찾아오는 주민이 없자『누구를 위해 싸웠는지 모르겠다』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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