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탕자쉬안 '핵 특사' 만난 김정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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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넷째)이 19일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로 방북한 탕자쉬안 국무위원(앞줄 오른쪽에서 다섯째)일행을 만나 회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촬영]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특사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것 자체가 북핵 위기에 작으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 위원장이 나선다는 것은 모종의 결심이 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탕자쉬안의 귀국 보따리에 뭐가 담겼을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 북한은 중국 측의 대화 제의를 여러 번 거절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면담은 의미 있다"고 말했다.

◆ 북한 입장 누그러지나=중국의 설득이 먹혔다고 가정할 경우 6자회담 재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다. 중국은 핵 위기와 상관없이 6자회담을 한반도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틀로 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중국 외교부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중국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이를 다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탕자쉬안 특사의 미국 방문을 통해 가져 온 미국의 대북 제재 강경 방안을 설득력 있게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강경한 제재 방침과 북한이 끝내 대화를 거부할 경우 중국도 이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득함으로써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다는 복안이다.

◆ 북한 어떻게 나올까=많은 전문가도 김 위원장의 특사 접견이 긍정적인 신호라는 점에 동의한다. '줄 선물' 없이는 특사를 만나지 않는 김 위원장의 스타일로 보아 탕 특사를 접견했다는 것 자체가 중국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암시라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탕 위원이 북한에 6자회담에 복귀할 만한 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고, 북이 이를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당장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 미국의 태도를 보아가며 대화에 응하겠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미국의 추가 반응이 나올 때까지는 2차 핵실험은 유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중국이 내놓은 카드가 좋으면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자제하면서 내부 검토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반면 외교안보연구원 전봉근 안보통일연구부장은 "북한이 이대로 주저앉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미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큰 도박을 한 상태이며 2차 핵실험에 관한 시나리오도 갖춰져 있을 가능성이 커 중국이 북.미 직접대화, 제재 완화 같은 큰 선물을 제시하지 않는 한 쉽게 멈추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 공들인 중국=중국은 탕자쉬안 국무위원에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부부장과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를 동행시킴으로써 북한에 성의를 보였다. 탕은 격이 다이에 비해 높지만 북한에는 '기피성 인물'로 분류된다. 탕자쉬안은 1990년대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를 지내면서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그래서 북한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다이 부부장은 중국 내 최고의 북한통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다이 부부장을 좋아한다고 한다.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 자격으로 과거 북한을 방문했을 때 다이에게 김 위원장은 "우리는 동지"라고 말했을 정도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신임하는 탕을 특사 자격으로 보냈지만 김 위원장과 사이가 좋은 다이를 함께 동행케 함으로써 대화 분위기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서울=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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