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의 버려졌던 편지 한데 모았죠"|『보헤미안의 남쪽바다』펴낸 박중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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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무명시인인 박종일씨(43)가 친구 김종훈씨(43)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76년 12월이었다. 6년여의 해군 하사관생활을 끝마친 그가 눈 내리는 겨울밤 홀연 박씨의 고향인 부여 칠 산촌 에 찾아왔다.
제대 후에도 바다 곁에서 일하겠다던 그는 그러나 자신이 끝내 평범하게 살지는 못할 것이며 둘의 재회는 이것으로 마지막일 것이라는 운명적인 암시를 남기고 이틀 후 그곳을 떠났다.
비록 벌거벗고 죽 마를 같이 탄 생 이의 벗은 못된다지만 두 사람은 사춘의 고교(덕수상고)1년 때 같은 반 앞뒤에 자리를 받아 앉고 부 터 마치 연인간의 사랑에나 비길 진한 우정과 지음의 세월로 서로를 묶어 온 사이였다.
그때 부소산입구의 한 다 실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헤어진지 14년.
지난해 가을 추석을 앞두고 고향 칠 산촌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부엌 한 모퉁이에 불쏘시개 감으로 버려져 있던 친구 김종훈씨의 편지묶음을 발견하고 박씨는 아득히 잊고 있던 옛 기억과 사우의 그리움으로 몸을 떨었다.
잠적한 친구를 찾고 싶었지만『이리 소식이 없는걸 보면 헤어질 때 그가 암시했던 대로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의 념이 그후 박씨를 내내 괴롭혔다.
생각 끝에 박씨는 김씨가 자기에게 보냈던 그 편지글들을 간추려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그가 사는 성남시 상대원동에 서둘러「가림 출판」이란 출판사 간판을 내걸고 김씨의 편지글모음인『보헤미안의 남쪽바다』를 펴낸 것이 지난 3월5일. 행여 인연이 닿아 살아 있는 친구 김씨가 그 책을 본다면 바람처럼 달려와 그 앞에 서 줄 것으로 그는 믿었다.
「초월을 위한 세레나데」란 부제를 단『보헤미안의 남쪽바다』는 김씨가 67년 일가파산의 찢긴 신세로 고교졸업식에 마저 참석하지 못하고 경기도 의정부에 피??해 들어간 19세 때부터 8년 동안 친구에게 써 보냈던 젊음의 자기고해 기록이다.
『우리 집은 모친의 경 동에 기인해서 파산했다. 이제 나는 파산의 잔 사를 종결짓고 공수 활의 발기를 기다려야 할 입장이다』라고 그는 책의 서두에 실린 한 편지에 썼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글들은 비참하게 이어지는 가난, 그 가 난이 지워 준 허기와 공복, 젊음의 오기와 사랑과 번뇌, 불도로서의 철학적 사변과 초월을 위한 끝없는 명상, 성의 미 망과 본능, 우정 등 추상화할 수 있는 모든 일상을 천재성이 도처에 번득이는 빼어난 문 기로 녹여 내고 있다.
그리고 제대 무렵의 병영에서 마지막 부친 편지에 그는『아득한 타계에 있다 한들 먼 게 아니어라. 보이지 않아도 늘 곁에 있음에랴』라는 자못 절 세의 의미가 깃들여 있음직한 선구를 넣어 글을 끝맺었다.
김씨는 살아 있었다. 책을 점 두에 깔고도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 자 박씨는 손수 친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컴퓨터에 조회하여 아무렇게나 붉은 줄이 그어진 김씨의 동 적을 실마리도 없이 확인하고 다니는 일이 병약한 박씨에겐 힘에 겨웠다. 그렇게 두 달여, 마침내 의정부 도봉산 자락의 장수 원에서 김씨가 세 들어 사는 집을 찾아냈다.
범상한 삶이었다. 그는 5년 동안 막노동판을 굴러 와 이젠 어엿한 건축설비기술자가 돼 있었고, 10년 연하의 아내와 아홉 살 짜리 쌍둥이 사내아이를 곁에 두고 있었다.
『찾기로 따진다면 내 사는 곳을 뻔히 아는 네가 나섰어야지』라고 김씨의 손을 움켜쥔 박씨가 야속하다는 듯이 말했다.『살아 있는데 우리가 어딜 가나. 조금 빨라. 한10년 지난 뒤에나 만나는 건데.』김씨가 웃으며 응수했다.
박씨가『보헤미안의 남쪽바다』를 김씨에게 건네주었다. 김씨는 자기가 쓰고는 내내 잊고 있던 글을 모은 이 책의 지은이였고 박씨는 그 글들을 한 줄 한 줄 꿰어 맞춘 엮은이였다.
박씨는『책을 낸 것은 14년간이나 소식을 끊고 사는 친구를 찾아내려는 충정에서였으며 젊은 시절의 그의 내밀한 기록을 까 발겨 짐짓 상처를 안겨 주는 일이 있으면 어찌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책을 아내에게 다시 건넸다.
『읽어봐. 당신을 만나기 한참전의 벌거벗은 내 모습이 거기 있을 거야. 여자얘기도 심심찮게 나올텐데, 절대로 묻지 않는다는 조건이야』하고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김씨는 글쓰는 일을 잊고 산지가 꽤 오래 된다고 말했다. 문학을 생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던 건 한때의 철없음과 치기 때문이었으며 머리보다는 몸을 써서 살아가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종일아, 그렇지 않니. 억만 금을 가진 재벌들도 하루 세끼밖엔 못 먹는데 나는 새참까지 여섯 끼를 먹어. 그리고 무엇보다 땀흘려 일하고 나면 깊은 잠 을 잘 수 있거든.』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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