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화제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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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추워라."

17일 저녁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의 한 맨션. 자신의 와인 셀러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그래도 만화작가인데 와인이 있어 봐야 작업실 옆쪽에 조금이겠지" 했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10평가량의 네 벽면이 온통 와인투성이다. 실내 온도는 16도에서 18도로 유지되게끔 24시간 에어컨을 돌린다. 월 12만 엔가량의 유지비가 든다고 한다. 마룻바닥과 화장실에도 와인이 넘쳐났다.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한 3000개 되려나요."

공전의 히트를 이어가고 있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亞樹直). 알고 보니 '아기'는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친남매 사이다. 필명을 하나로 할 뿐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었다. 집도 5분 거리라 1주일에 3~4일은 같이 만나 와인을 마시며 스토리를 구상한단다.

인터뷰 내내 속사포처럼 내뱉는 두 사람의 와인 예찬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어떻게 해서 와인 만화를 쓰게 됐나.

누나(48) : 몇몇 와인 관련 만화가 있었지만 주인공 중심이고 와인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신의 물방울'처럼 주인공이 와인인 만화는 없었다고 본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도구일 뿐이다. 내가 와인에 홀린 것은 로마네콩티에서 만든 '에세조'를 마신 이후다. 와인 안에 작품이 있음을 느꼈다. 그 스토리를 끌어낸다면 충분히 만화가 될 수 있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동생(44) : 예전부터 와인을 마시긴 했지만 수집가가 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서로 다른 와인 안에 있는 드라마와 메시지를 이야기로 표현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신의 물방울'을 보면 고급 와인보다 1000엔~3000엔대의 비교적 저렴한 와인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가 있나.

누나: 처음 와인을 마시는 이들이 1만 엔이 넘는 것들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와인에 입문할 때는 저가의 것을 먼저 사 마시는데 그게 맛없으면 와인을 포기하게 된다. 와인의 세계를 넓히고자 하는 게 나의 욕망이므로 저가 와인 중에서도 훌륭한 것을 발굴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발견하기까지는 여러 실패가 있었다(웃음). 동생과 1000개 정도는 실패한 것 같다. 쫙 잔을 나열해 조금씩 마시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치우고 다시 다른 종류의 와인을 마시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동생: 처음부터 100만 엔짜리 와인은 없다. 맛이 소문나고 하면서 많이 찾게 돼 그렇게 될 뿐이다. 장래에 100만 엔이 될 법한, 하지만 지금은 싼 와인들이 분명히 있다. 와인의 최초 조건은 가격이 아니라 품질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나.

동생: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단순해선 안 된다. 단지 맛보다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복잡한 세계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시 빈티지(생산 연도)가 중요하다. 즉 천(天), 지(地), 인(人)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하다. 날씨만 좋아선 안 되고 비옥한 토양, 그리고 험한 조건에서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노력이 가미돼야 진정한 와인이다. 예컨대 수확철에 비가 오면 포도밭에 비닐을 씌우는 미국 와인은 생산 연도가 별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는 자연의 섭리 그대로 맡기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오키모토 슈)와는 어떻게 협의를 하나.

동생: 우리 남매가 원작안을 건네면서 이미지를 요구한다. 그러면 그쪽에서 가져온 것을 보고 고치는 작업을 같이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의 윤석호 감독 작품을 좋아해,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미네 잇세(와인 평론가)는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씨를 모델로 해 달라고 했다. 윤 감독의 '봄의 왈츠'가 일본어판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최지우씨와 이영애씨의 팬이기도 하다.

누나: 책에 나오는 인물 중 2명이 실존 인물이다. 간자키 시즈쿠(주인공)와 같은 직장에 있으며 이탈리아 와인에 푹 빠져 있는 혼마는 바로 이 건물(기치조지 도큐백화점) 지하에 있는 와인숍 매니저다. 또 7권에 와인스쿨의 강사로 나오는 사이토도 실존 인물이다. 주인공 간자키의 특기인 디켄팅은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서 3등을 한 인물의 기술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현재 도쿄 롯폰기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책을 보면 프랑스 2001년산 와인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12사도 중 제1 사도로 선정된 와인도 2001년산 샹볼 뮤지니였다. 어떤 특징 때문에 선택하게 됐나.

동생: 세계적인 와인 거장 '로버트 파커'는 2002년산 샹볼 뮤지니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줬지만 우리는 2001년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아까 이야기한 '천.지.인'의 조화는 바로 2001년산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2002년보다 2001년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믿고 있다. 파커는 마시기 좋은 와인을 높게 평가하고 우아한 와인에 대해선 좀 짠 것 같다.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와인을 들라면.

동생: 이런 이야기하기가 좀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가격이 100만 엔짜리라…(웃음). 1985년산 로마네콩티에 버금가는 것은 없다고 본다. 85년산을 마시기 전에 다른 빈티지 세 종류를 마셔본 상태였지만 85년산을 마시는 순간 모두 잊고 말았다. 딱 한 잔 마셔봤지만 조그마한 잔 안에 있는 와인의 향기가 떨어져 앉아 있어도 바로 전달돼 왔다. 입을 대는 순간 녹아웃이었다. 딱 그 한마디다. 100점 만점의 완벽한 살아 있는 와인이었다.

-한국의 독자들과 와인 애호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누나: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면서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감성이 풍부하고 정이 깊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한국 요리 중 와인에 어울리는 것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 갈비나 파전 같은 게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동생: 실은 이건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건데 조만간 '신의 물방울'에 '한국편'을 등장시키려 한다. 주인공이 뭔가의 이유로 인해 한국을 찾아 와인을 묘사하는 대사를 착안해 내는 내용이 될 것 같다. 한국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란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이 만화를 드라마로 하자는 이야기가 여럿 들어와 검토 중이다. 실은 누나나 나나 한번도 한국에 가보질 못했다."

<도쿄> 글.사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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