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교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프로진행 TV 라디오 호응 높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인기작가·교수·의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나운서처럼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지만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TV·라디오프로를 끌어가는 MC로 차츰 자리 잡아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문학평론가 박동규 교수(서울대)의『문화가 산책』(KBS-1TV), 작가 박범신씨가 진행하는『문화살롱』(KBS 라디오서울), 이시형 박사(고려병원 신경정신과)의『사랑의 교실』(MBC-TV)등 이 손꼽을 수 있는 예.
문학·연극·음악 등 문화를 비롯, 청소년·시사문제 등 주로 전문 분야를 다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사회를 맡은 직후 한동안 달변은커녕 어눌함 내지 때로 섞여 나오는 사투리 등으로 제작진이 애를 먹고 시청자들은 어색함을 느껴야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 게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방송이라면 세련되게 다듬어야 하지 않느냐는 기존의 틀을 깬 데다 진행자 본인의 노력과 시청자와의 잦은 접촉에 따른 친근감,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알기 쉬운 풀이 등 이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제작자들은 귀띔한다.
양 방송사의 올 봄 프로그램 개편 때 눈에 띄게 늘어나기도 한 이 같은 프로그램들 중 두드러진 것은『문화가 산책』.
86년 시작 당시만 해도 방송매체의 대중적 성격과는 달리 다루는 내용 자체가 고급문화 쪽이라는 인상이어서 모험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흥미본위의 대중적인 면과는 동떨어져 있었죠.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이 받아들여진 겁니다. KBS의 공익차원 프로그램 편성과도 맞아 떨어졌고요. 문제는 진행 자였죠.』
시인 박목월 선생의 장남으로 지명도도 있고 재담 가이며 달변의 강의로 유명한 박 교수가 처음엔 방송 때마다 더듬거려 진땀 깨나 흘렸다는 현정주 PD 등 제작진의 말. 이 같은 실수 아닌 실수가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가능한 한 천천히 전달하려는 박 교수의 의욕에서 빚어졌다는 게 뒤늦게 알려지긴 했으나 외부 전문직업인의 MC기용이 쉽지는 않았다고.
진행자가 연극·음악 등 각종 공연 및 전시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전해 주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와 온 이 프로는 일반인의 대중성과 문화예술인의 전문성 사이의 문화적 간격을 조금씩이나마 메워 가는데 큰 역할을 한 대표적인 경우로 방송가에선 평가한다.
86년『문화가 산책』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지만 올 봄 개편 때 진행 자를 아나운서에서 인기작가 박범신씨(44)로 바꾼 KBS라디오서울의 『문화살롱』(매일오전 11시 5분∼낮12시)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
『방송진행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아 왔으나 말주변이 없어 망설였어요. 그러나 작가 개인의 밀실(서재)이 아닌 방송이라는 광장에서 문학을 소개하고 다른 문화의 현주소를 알리는 일이 건강한 대중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진행 자로 나선 겁니다.』
88년『박범신을 통해 본 중국기행』, 금년 4, 6월『박범신 아프리카 휴먼기행』(KBS -lTV)을 통해 잠시 방송과 인연을 맺은 그는 요즘 저급한 문화까지 대중문화로 치는 풍조가 온당치 못해 이 프로를 통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중간계층의 대중문화를 알리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까지 터부시 해 온 성 문제를 포함, 진로·성격·가정등 골이 깊은 청소년문제 전반을 다루기 위해 올 봄 새로 생긴 MBC-TV 『사랑의 교실』(매주목요일 오후11시∼11시45분)도 속사정은 마찬가지.
어른들이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이들의 고민을 진행자의 엉뚱한 코멘트로 자칫 그르치거나 프로그램 분위기 자체를 흐릴 수 있어 이 분야 전문가이면서도 방송경험이 있는 이시형 박사가 적임자로 선정됐다.
물론 이 같은 전문직 MC를 적절치 못하게 택해 프로가 중간에 진행 자와 함께 바뀌는 경우가 간혹 있어 지난해 말 신설된『여론광장』(MBC-TV·매주토요일 오전10시)은 전문지식과 순발력 등을 고루 갖춘 진행 자를 찾는 과정에서 현재의 황산성 변호사 등 30여명이 거론돼 방송사 간부들 사이에 격론을 벌였을 정도.
전문지식을 위주로 하지는 않지만 주변 소시민 이웃들의 훈훈한 얘기를 다루는『사랑방중계』(KBS-2TV·금요일 오후8시)는 이미 오래 전인 83년부터 영화평론가·소설가·변호사 등을 거쳐 현재는 동국대 황필호 교수(철학과)가 아나운서와 공동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대토론회』(KBS-1TV)의 김광웅 교수(서울대), 『고전백선』(KBS-3TV·서울대 김윤식 교수), 『한국민요대전』(MBC라디오·이보형 문화재 전문위원)등 전문가들의 방송MC로의 진출은 늘어나는 문화욕구 등과 함께 계속 증가할 것으로 방송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김기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