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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적 경제학이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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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실증적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며, 실증적 수치를 가지고 계량적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이론적 틀을 처음 선택할 때 실증에 기반하지 않는다. 특히 경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실증적 수치를 일부러 참고하지 않는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극단적인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전후 거시경제학적 정책 결정이다. 이들은 실업률이 임금에 대한 '유효 수요'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검증되지 않은 케인스의 이론에 의존했다. 이들은 완전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선 결국 유효 수요가 적당히 높은 수준에서 안정된다는 점과 임금 수준과의 관계를 간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극단적 케인스 학파의 주장은 전후에 계속 먹혀들어갔다. 전후 거시경제학은 완전 고용만 추구했으며, 임금 수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무런 검증 없이 고려하지 않았다. 경제학자인 해리 존슨은 이를 경제학의 '조롱거리'라고 비판했다.

1950년대 말, 신(新)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들이 비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가가 떨어지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내려가면 물가가 오르게 된다는 '필립스 곡선'이 발표되면서 유효 수요 이론의 설득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신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들은 임금 수준이 오르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서 유효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론의 일부를 수정했다.

그러나 나는 수정된 이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수정된 신케인스 학파의 이론도 물가 상승률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신케인스 학파도 극단적인 케인스 학파와 마찬가지로 실증을 멀리했다. 수요 증가는 단지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70년대 '공급 충격'이 미국 경제를 흔들자 그 신념은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신케인스 학파도 유효 수요에만 매달렸으며 수요만이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 모두를 중시한다. 물론 두 이론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경제학 이론의 틀을 만들 때는 수요와 공급 양 측면을 모두 살핀다.

현재 근로소득세율이 적정 세율보다 낮은데, 향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될 경우 노동자들은 현 상태에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향후에는 일을 게을리한다는 노동경제학의 대표적 이론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을 받은 이론이다.

그러나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은 각 나라의 실업률과 근로세율 수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며, 오히려 근로세율이 계속 떨어질 경우에만 노동자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며 이 이론이 틀리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필자가 최근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봤는데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실업률이 높고 근로세율이 높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실업률이 높고 근로세율은 낮은 일본.스페인 모두 노동경제학 이론이 맞았다. 실업률이 낮고 근로세율이 낮은 미국.영국과, 실업률은 낮고 근로세율은 높은 덴마크.스웨덴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유럽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근로세율을 낮춰야만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실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근로세율을 내리면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낮출 수는 있으나 20년 정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실업률을 낮추는 데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실증적 검증 없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경제 정책을 실시할 경우 오히려 경제 펀더먼털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없게 된다.

에드먼드 펠프스 200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정리=강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