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행로」 발목잡기 작전/김대중총재 조건부 선전포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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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3년 대권」 투쟁명분 축적/여 받아들일 전망 흐려 대결 불가피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임시국회회기를 1주일 남긴 막바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자제 아니면 전면투쟁」을 내건 것은 당장의 임시국회 뿐 아니라 향후 정국운영을 내다보고 미리 싸울 명분을 비축해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적으로는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진 임시국회의 책임이 여권에 있음을 확실히 하고 이후의 정국긴장도 여권의 일방강행에서 비롯했다고 못박아 두자는 계산이다.
동시에 여권에 대해서는 평민당의 협조없이는 원만한 정국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자는 세과시의 측면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김총재의 주장으로 보면 여야간의 입장에는 합치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 이점은 그가 투쟁대상으로 삼은 내용에서 보다 분명하다.
그가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부분은 여권이 최소한의 처리대상으로 삼은 것들과 정면배치 되는 것이며 그가 요구하는 부분은 여권이 기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자당이 기어이 강행처리하겠다는 국군조직법및 방송구조개편 3개법안은 당운을 걸고 투쟁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민자당이 「여야합의」를 이유로 사실상 실시를 보류하려고 하는 지방자치제는 어떻게든 관철하겠다는 게 김총재의 주장이다.
나아가 광주문제와 관련해서는 평민당의 요구가 거부될 경우 93년에 탄생할 정부와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10년을 기다렸는데 3년을 더 못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쐐기를 박아두고 있다.
이같은 김총재의 언명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강력히 요구해 온 지자제관철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해석하고는 있지만 이번 국회와 그 이후의 강경투쟁을 위한 명분축적용으로 보는 게 지배적이다.
여권내부사정을 간파하고 있는 김총재가 여권의 구상 하나하나에 고리를 걸어둔 채 당운을 건 투쟁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실패할 때는 원내외에서 전면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은 단순한 엄포로 볼 수 없으며 92년 총선과 93년 대권경쟁을 내다 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얘기다.
사실 3월임시국회이후 제기된 야권통합논의 과정에서 김총재는 2선후퇴 요구등으로 그의 권위는 상당히 손상되었고 강경기조로의 선회는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영수회담이후 모종의 흥정설이 나돈 것도 김총재를 강경으로 밀고 간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김총재는 미리부터 6월국회를 「대결국회」로 규정,소속의원들을 독려하고 긴장상태를 유지해 왔다. 김영진의원이 명패를 휘두른 문공위 폭력사태를 야기시키고 이에대한 상식선의 사과조차 거부하는 것도 이번 국회의 정상가동을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이번 국회를 극한대결로 몰고 가야 지자제 흥정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고 나아가 사태가 원활하게 진전되지 못할 경우 가을 정국에서 싸울 구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총재로서는 지방자치제 선거가 이뤄져 야당이 지방의회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을 확보해야 93년 대권경쟁에서 싸워볼 만한 여건을 확보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로서는 상당히 필사적이다. 이것은 앞으로의 대통령선거에 대비하는 뜻도 있어 다른 한편으로는 여권의 내각제시도에 대한 견제구실도 한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김총재로서는 여권이 스스로 합의사항을 어겼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지자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작정이다. 이번 회견에서 김총재가 특히 지자제에 초점을 맞춰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결국 남은 문제는 여권이 김총재의 요구를 얼마 만큼 수용하느냐는 것인데 여권의 사정으로 볼 때 그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며 평민당은 이번 국회가 소득없이 끝나면 이미 3백만명의 서명을 받은 지자제요구 1천만명서명운동을 본격화해 장내외투쟁으로 확대해 나갈 가능성도 있어 정국의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김현일기자>
◎김대중총재 기자회견 요지/거여 약속 안지켜 정국 경색 초래/광주문제 일방처리 단호히 거부
◇국회경색의 이유=첫째,3당합당이 국민을 배신한 비도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여야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됐다. 둘째,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이 합당전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것을 파기함으로써 여야간의 대결이 치열해졌다. 셋째,야당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다수의 횡포를 부리려하는 민자당의 태도에 원인이 있다.
오늘의 국회운영의 경색상태는 노정권과 민자당의 반민주적인 태도와 약속위반에 책임이 있다.
◇지방자치선거법=이번 임시국회에서 지자제 선거법은 지난해 12월 합의된 대로 입법돼야 한다.
여당이 정당추천제를 반대하면 그들이 추천하지 않으면 되지,다른 정당까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
정당이 중앙정치는 책임지지만 지방정치는 책임지지 말아야 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야당이 당연히 차지할 시장ㆍ구청장ㆍ도지사나 군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평민당은 노정권과 어떠한 타협도 않을 것이며 임시국회 나머지 기간중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추경예산=2조원에 달하는 추경예산을 통과시켜주면 물가를 더한층 앙등시킬 우려가 있다. 추경의 내용은 주로 소모성 경비로서 급한 것도 아니니 9월 정기국회까지 처리를 유보해야 한다.
정부가 약속대로 지자제를 실시하겠다면 추경예산중 최소한의 긴급불가피한 액수는 통과시켜줄 수 있는 등의 융통성을 가지고자 한다.
◇국군조직법과 방송법=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일단 처리를 유보하고 여야가 심의소위를 구성해 단일법안을 만들어 9월 정기국회에서 원만히 처리해야 한다.
이같은 건설적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상임위와 본회의를 불문하고 이의 통과저지에 전력을 다하겠다.
◇광주관계처리=광주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도 ▲진상규명 ▲명예회복 ▲배상 ▲기념사업이라는 4대원칙이 관철돼야 한다. 관련법안은 광주특위에서 처리돼야지,법사위에서 처리되어선 안된다. 노정권이 일방적으로 그들의 법안을 강행할 때는 무효임을 단호히 주장할 것이다. 노정권이 정당한 해결을 거부할 때는 93년에 탄생할 민주정부아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여야 중진회담=보안법ㆍ안기부법ㆍ경찰법ㆍ노동관계법 등의 개혁입법은 여야 중진회담을 열어 협상하겠다.
◇전면투쟁 불사=노정권이 끝까지 지자제에 대한 약속을 어겨서 그 입법을 거부할 때,그리고 반민주적 악법제정과 추경의 통과를 강행할 때 당운을 걸고 통과저지 투쟁을 벌이겠다. 여당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투쟁이 좌절되면 원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면투쟁도 불사할 것이며 필요에 따라 중간평가에 대한 노정권의 신임을 묻는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하겠다.
이 모든 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시켜 전국민이 안심하고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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