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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화 맞아? 재불화가 정기호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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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 캔버스 살 돈 마저 없던 지독한 가난. 그의 그림에 반해 시집 온 아내와의 로맨스. 그를 정신병원에 갇히게 한 광기. 그리곤 3000여 점의 작품을 들고 돌연 파리행.

재불화가 정기호(66) 화백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샤갈 풍의 몽환적 그림, 판화 기법의 '태 시리즈' 등 독특한 작품 세계에 국내 화단은 주목하지 않았다. 외로웠고 힘들었지만, 붓을 놓는 법은 없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작업을 한다. 120매짜리 드로잉 연습장을 3일이면 꽉 채울 정도다. 지난 1년 새 그린 그림이 100여 점이다. 지독한 다작이다. 그는 "아프고 힘들어서 못해본 것을 하루하루 막 쏟아냈다"고 했다.

'정기호의 놀이적 세계'라는 이번 전시는 그의 지난 1년을 반추하는 자리다. 이전의 작품들이 좀 어두웠다면, 신작들은 즐겁다. 벌거벗은 아이, 혹은 벌거벗은 여인은 산.풀.나무 등 대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때묻지 않은 천진함이 배어난다. 붓터치와 안료도 달라졌다.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마치 사인펜으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색깔도 딱 사인펜 색이다. 이에 대해 정화백은 "사인펜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유화 물감이다.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발견한 나만의 기법"이라고 말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정 화백의 꿈은 죽기 전에 큰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표현하고 싶은 걸 다 넣기에 캔버스는 너무 좁기 때문일까. 가난도, 소외도 뺏어가지 못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일까지,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 4층 다보성 갤러리. 02-732-2240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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