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안보서 정치기구로 변신모색/16개회원국 정상 런던서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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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냉전종식 새국제질서 대응/독일가입 소 양보 요구할 듯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장래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나토 16개회원국 정상회담이 5일 런던에서 개최돼 이틀간의 회의에 들어갔다.
동서독 경제ㆍ화폐통합과 소련공산당대회 개최 등 국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들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개최되는 이번 회담에서는 지난 40년동안 유지돼온 나토의 방위전략과 구조,전력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나토는 냉전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걸맞는 성격으로 변모될 전망이다.
2차대전후인 지난 49년 미국의 주도하에 성립된 나토는 55년 결성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함께 동서냉전구조의 핵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최근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급격한 정치ㆍ사회적 변화는 군사기구로서 나토의 존재이유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됐다.
이미 냉전은 끝났고,바르샤바조약기구는 사실상 와해상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되고 있는 판이어서 나토의 현상유지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연간 1천8백억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나토 유지비로 쏟아붓고 있는 미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말할 것 없이 미군이 배치해놓은 핵무기로 인해 핵전의 위협에 항상 시달리고 있는 유럽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판국에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위기에 직면한 소련은 장기적으로 이 양대군사기구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로 대체하는 구상을 제시,사실상 나토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나토로서는 진퇴유곡의 난국에 처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에 참석한 대부분의 회원국 정상들은 나토의 위상재정립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이유 자체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는 공통인식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소련은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초강대국이며,유럽이 안보차원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나토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통합과 함께 장기적으로 유럽의 독자적 안보체계구축을 꿈꾸고 있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장차 유럽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통일독일을 군사적으로 제어,불안요인을 사전 제거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으며,미국은 유럽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력행사 여부가 나토의 결속에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서로의 속셈은 다르지만 나토존속은 불가피하다는 공통인식이 이번 회담의 핵심과제의 하나로 통일독일의 나토편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독일이 제외된 나토가 서유럽 안보기구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독일이 유럽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유럽세력 균형의 중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미대통령과 서유럽 주요국가 지도자들이 통일독일의 군사적 지위문제에 관한 고르바초프의 거듭된 제안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나토잔류를 완강히 고집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통일독일의 나토편입과 이를 통한 나토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몇가지 대소양보카드가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나토의 유지가 소련에 불안요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유럽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고르바초프가 소련내의 여론을 무마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이 두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나토회원국은 나토의 위상재정립에 관해 군사기구에서 정치기구로의 변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부시행정부는 지난 30년간 나토방위개념의 기본이 돼온 ▲신축대응,전진방어 등 두가지 방위전략의 전면적 개편과 ▲서유럽배치 전술핵의 완전철거 ▲단거리핵미사일의 신형교체 계획포기 ▲나토군의 다국적 편제로의 전환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통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나토군의 병력감축문제나 핵전력감축문제 등은 현재 진행중인 바르샤바조약기구와의 재래식무기감축협상(CFE)이나 그 뒤에 이어질 미소간 단거리핵미사일 감축협상 결과에 달려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점을 감안할때 이번 정상회담이 유럽의 새로운 방위체계정립과 관련,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런던=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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