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바탕으로 끄집어 낸 「혼란과 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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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글 읽는 것을 먹는 것에 비유할 경우 최일남은 독자들에게 같은 음식이라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내 놓는 능력을 지닌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최근 소설에서 보이는 맛깔스러움은 대상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입담의 덕분이기 보다는 날카로운 시선과 다면을 헤아릴줄 아는 인식력에 더 크게 힘입은 결과라고 하겠다.
중편 『따따로의 혀』(문학사상)는 이러한 판단과 추론을 잘 뒷받침해 준다. 『따따로의 혀』는 배운 혀, 생각의 혀, 감정의 혀와 같은 소제가 붙은 세가지 에피소드로 짜여진 옴니버스소설이다. 한회사의 관리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제 1화「배운 혀」에서는 학연으로인한 갈등과 소외감, 편가르기 형태와 불안감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노사대립의 와중에서 자신들의 입지확보와 자기합리화에 열중하는 관리직사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골고루 분석도 잘하고 두루 이해도 잘하고 또 그럴듯한 해결책도 갖고있으나 속으로는 제몫은 하나도 안놓치려 하면서 여전히 자기 보신에 급급한 화이트 칼러의 전형에 해당되는 셈이다. 제1화는 소시민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말과 행동의 괴리, 머리와 가슴의 어긋남, 본능과 명분사이의 거리등을 냉소적인 시선에서 포착해 낸 것이라 하겠다.
제2화 「생각의 혀」는 진보적인 논리에 서 있거나 운동에 뛰어 든 사람들이 도식적 사고와 편견 또는 경제제일주의의 가치관에 빠진 주위사람들로부터 이해되지 못하거나 비난받는 현실을 크게 문제시하고 있다. 제2화에서는 수직적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도 늘 벽을 느끼고 분열의식을 가지며 생활하는 한 대학생의 경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3화 「감정의 혀」는 지역감정이란 문제를 갖고 방송토론한 것을 마치 지상중계한 듯한 형식을 취한 것이다.
제3화에서 토론참가자들은 토론시에는 가장 논리적이며 도량이 넓은듯한 자세를 취하였으나 토론이 끝난 후에는 출신지와 학연에따라 끼리끼리 짝지어가는, 말하자면 공사가 어긋나고 안팎이 따로 노는 행동을 보이게된다. 여기서 최일남은 고등학교 여교사인 한 시청자의 입을 통해 지역감정극복에 대한 설득력이 높은 방안을 슬며시 제시하기도 했다.
『따따로의 혀』가 문제삼고 있는 혼란과 분열의 현상, 그리고 그의 원인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결과가 되기도 하는 인물들은 최근의 여러국가들이 본의아니게 그 실례가 되고있는 것처럼 작가들을 소재주의로 몰아넣기가 쉽다. 말하자면 최일남은 소재주의의 수준에서 성큼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옴니버스 형식을 통해 오늘·여기의 문제적인 것의 외연을 잘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화체나 토론체 형식으로 내달아 문제적인 것의 핵심을 짚어 낼 수 있었고 이어 전망의 위치에까지 나아갈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학적 성취는 한 지식인으로서의 최일남의 결코 범상치 않은 직접체험의 내용을 바탕으로해 나온 것이기에 더욱 속찬 것이 된다. 조남현(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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