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 미병사 작전지도기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 지도 두장에 한국전쟁의 상흔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도에 스며든 땀한방울도 후세에게 세계평화를 지키는 조그만 힘이 되지않을까 해서….』
18일 오후 서울여의도 종합안보전시장에 백발이 성성한 벽안의 노인이 표면이 거의 닳은 지도 두장을 갖고와 전시장에 기부했다.
6·25 최대격전지였던 「철의 삼각지대」 전투에 참가, 피의 능선읕 헤치고나와 이제 이순을 갓 넘긴 미국인 조지 크라벤스씨(62) .
그는 우선 자유와 평화수호를 위해 산화한 전우들앞에 성성한 모습을보여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50년 10월 미보범 암사단소속 기관총사수로 일본 오키나와에 근무하던중 한국전에 참가, 만 13개월동안 전쟁의 처절함을 맛보았다.
51년 11월 부대교체로 본국으로 귀환, 40년만에 처음으로 당시 폐허의 땅을 밟았다.
『놀랐습니다. 이렇게 발전했을 줄은….」
크라벤스씨는 김포공항에 도착 혹시 동경항비행기를 잘못탄 것 아닌가 착각을 했다고 말했다.
51년 7월 크라벤스상병은 소대 분대장으로 분·대원10여명과 함께 철의 삼각지대 일부인금화읍부근 고지를 탈환하기위해 적 후방을 교란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칠흑같은 밤에 쏟아지는 탄환·포탄사이를 낮은 포복으로 비집고 들어가 M60기관총을난사 적후방 교란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후 하산하다 적들이 파놓은 5m깊이의 구덩이에빠져 왼쪽팔목이 부러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적군의 추격속에서 구덩이를 빠져나와 부대로 귀환할때까지 2시간을 그는 「삶과 죽음이공존했던 시간」이라 불렀다.
크라벤스씨는 당시 겪었던 구사일생의 순간순간들이 자신이 갖고 다니던 금화읍부근 군사지도(5만대1)를 볼때마다 TV화면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큰딸(31)과 작은딸(27)이 『아버지의 추억과 가보를 없앤다』는 이유로 지도기증을 반대했지만 『세계평화를 지키는데 의미가 있다면 개인이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며 설득했다.
안보전시장측은 『크라벤스씨의 작전지도가 그 어느 지도보다 땀방울이 스며있어 당시의 긴급했던 상황을 느낄수 있게 한다』고 평가, 미보병24사단 전시유물에 포함해 전시키로 했다.
53년 전역, 현재 미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있는 조이건설 제조회사에 판매담당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그는 6·25 40주년을 한국땅에서 맞기위해 3주간의 특별휴가를 회사에 신청, 부인 펄 크라벤스여사(58)와 함께 격전지를 찾았다.
『국립묘지에 잠든 옛 전우들을 만나보고 지구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한다는 개인적인결의를 다졌습니다. 이것이 40년만에 한국을 찾은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최?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