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실전논술] 공유지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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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반대 시위

◆ 제시문 해설

이번 글에서 내용으로 삼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은 경제학 개론에서 흔히 다뤄지는 중요한 주제이다. 학생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는 야기되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 해법으로 각 개인의 시민의식 개선과 제도 마련이 상충하는 대안으로 제시될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논증하는 일이다.

공유지의 비극에서 문제의 핵심은 각 개인이 얻게 될 이익과 부담을 고려할 때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공멸로 이어지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개인들의 선택은 겉으로 보기엔 항상 이익이 더 커지는 방향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간과하는 것은 어떤 임계치를 넘어설 때 개인들의 이익이 증가하지 않고 반대로 모든 개인들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지경으로 간다는 점이다.

각 개인의 시민의식이 개선된다고 치자. 이 경우 탐욕스러운 개인이 소수만 존재하더라도 상황은 개선될 수 없다. 결국 공멸을 막는다는 목표는 성취될 수 없다. 반대로 제도가 마련된다고 치자. 이 경우 규칙을 위반하는 개인은 제재를 당할 것이기에 상황은 분명 개선된다. 따라서 제도 마련을 통해 개인의 일탈을 막고 전체의 이익을 유지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시민의식 개선이 수반되어야 좋다. 그 까닭은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개인이 수긍한 후에야 제도 마련에도 참여하고 만들어진 제도를 더 잘 따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문제 해결에 있어 핵심 사항과 보완적인 부분을 혼동하지 않는 일이다.

◆ 학생글:홍준기(삼산고3)

개인의 이익에만 집착하다 모두가 피해

(1) 공유지의 비극은 각 농가들이 그들만의 이익에 집착하고 추가방목에 따른 부담비용을 다른 농가가 함께 부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일어난다. 각 농가들이 모두 추가방목을 하여 부담비용이 기대수익보다 커지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일은 각국의 환경파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경오염에 따른 피해는 타국가들과 함께 부담하므로 환경파괴에 대한 피해가 다소 있더라도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막대해지는 것이다.

(2) 공유지의 비극은 개인 이익만의 추구와 자신의 책임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익만의 추구가 오히려 개인과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시민의식의 확립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의식의 확립만으로는 자발적으로 이익을 절제하고 타인과 협의를 통해 이익을 조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즉 행동을 규범화하고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시민의식의 확립이 전제되지 않는 제도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3) 먼저 강자 중심의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제도는 각 개인들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각 개인들 중 제도의 제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재산이나 권력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강자이다. 실제로 세계화를 목적으로 한 FTA는 미국이라는 강국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다. 의약개방과 같은 문제는 미국에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우리나라에는 큰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반면, 미국에 대한 수출품의 관세하락 같은 보상은 미약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미국이 세계 공동체적인 의식의 부족함이라 볼 수 있다. 즉 강자를 포함한 개인 전체가 시민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불합리한 제도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

(4) 또 시민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제도의 확립은 개인들이 제도를 따르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은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할 것을 약속하는 교토의정서를 탈퇴하였다. 개발도상국들에게만 너무 많은 혜택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국의 경제이익을 위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즉 환경오염의 심각함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세계 공동체적 의식이 결여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결여와 자국의 이익추구가 결합되어 국제협약이라는 제도의 불이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립이 선행되어야만 제도를 올바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도 비극이 생기는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시민의식의 확립이 필요한 것이다.

(5) 그러나 시민의식이 확립되었다 하더라도 공유지의 올바른 사용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지나친 이익추구로 인해 분별없이 공유지를 사용할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 개인이 합리적인 공유지 사용에 대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의식의 변화에 따른 제도의 제정만이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 총평.첨삭

군더더기 많아 아쉬움

이번 논제에서 문제의 핵심을 짚어가며 논의를 이어간 학생이 없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다른 학생에 비해 핵심에 근접해 있기는 하나, 홍준기 학생의 글도 개인의 이익 추구가 필연적으로 자신을 망치게 되리라는 전제를 간과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문단 (1)과 (2)까지의 내용은 대체로 무난하다. 문제 상황을 대체로 잘 요약했으며, 관련된 논의를 위한 초석을 잘 다지고 있다. 문단 (3)과 (4)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제도를 만들 때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된 미국의 행태는 문제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례들은 자기 이익 증대를 위한 행동의 사례일 뿐 공멸 방지라는 목적을 위한 행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멸을 막기 위해 미국은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할지, 그 제도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 제도를 지키지 않았을 때 대응 방안은 무엇일지 따위를 생각하는 편이 나았겠다.

물론 시민의식이 확립되어야 제도가 의미가 있다는 주장은 꼭 개진되어야 했다. 하지만 거의 3개 문단에 걸쳐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분명 분량 안배의 실패이며, 결론에서 다시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돌아올 바에야 처음부터 구성을 다듬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대표강사

◆ 다음 주제는

고교생 대상 실전 논술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중앙일보 joins.com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고교 논술방에 글을 올려주세요. 매회 20명을 골라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김재인 대표강사가 첨삭지도를 해드립니다. 또 우수 논술 한 편을 골라 총평과 함께 지면에 게재합니다. 논제와 관련된 제시문은 지면 사정상 '우리들의 수다' 고교 논술방에만 올립니다.

▶논제: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웰빙 문화'에 대한 한 편의 논술문을 작성하시오. 단, 논의 과정에서 아래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반드시 포함시키시오.(전체 분량 16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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