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성조기 훼손금지 개헌공방(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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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법원의 국기소각 허용 판결 계기/개헌론 여론에 호소 서명운동/반대론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올 가을 의회중간선거 앞두고 정치쟁점 될듯
표현의 자유는 여하한 형태라도 보장돼야 하는가. 미국은 대법원의 국기소각행위 허용판결을 계기로 이 문제에 관한 개헌논의에 휩쓸려 들고 있다.
11일 미최고재판소는 국기의 소각ㆍ훼손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한 「89년도 연방국기보호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제1차 수정헌법에 대한 위헌이라고 법해석을 내렸다.
이에 대해 즉각 보수계 공화당을 중심으로하여 의회는 국기훼손을 헌법으로 불법화 시키기 위한 개헌을 다짐하고 나섰고 부시대통령은 12일 국기보호의 유일한 방법은 개헌뿐이라며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국기소각에 한해 이를 금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제의했다.
이번 가을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돼온 국기소각에 관한 개헌을 둘러싸고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게될 것 같다.
9명으로 구성된 최고재판소는 찬성 5,반대 4의 의견으로 이루어진 이번 판결을 통해 『국기훼손행위에 대한 처벌은 국기를 경외의 표상으로 만드는 바로 그 자유와 경외의 가치를 약화시킨다』고 선언하고 국기보호법률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고 판시했다.
최고재판소는 이미 작년에도 국기소각을 규제한 텍사스주 법률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바 있다. 당시 부시대통령은 즉각 이번과 흡사한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미권리장전에 대한 수정을 주저한 의회의 태도로 재적 3분의 2인 개헌의결정족선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국기보호법률은 개헌은 피하면서 국기소각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수용하려는 의회의 편법조치였다.
뉴욕 타임스지와 CBS텔리비전이 공동으로 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83%가 국기소각행위를 불법화시키기를 바라고 59%가 이를 위한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백여년의 미 역사상 1만건의 개헌안이 제출되어 그중 26건만 빛을 보았던 점으로 보거나,특히 이번에 제기되고 있는 개헌이 성사된다면 제1차 수정헌법에 대한 첫번째 개헌이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미 헌법은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71년 별세할 때까지 34년간 최고재판소를 지킨 휴고 블랙판사는 『미 헌법의 권리장전은 절대적조항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최고재판소의 국기소각 허용 판결에 대해 진보적 민권단체들은 크게 만족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등 보수파들은 판결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기필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개헌추진을 돕기 위해 이미 1백50만명의 지지서명을 받아놓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헌문제로 가장 고심하게되는 곳은 의회가 될 것이다. 작년에 부시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했을때 상원은 찬성 51,반대 48로 부결했다. 민권문제를 좀더 부각시키는 민주당측이 자칫하면 기본인권의 제약조치로 매도될 수 있는 개헌에 선뜻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의회약세를 다소라도 만회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공화당은 국기소각금지 개헌을 주요 선거 쟁점으로 내세울 전략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톰 폴리하원의장과 조지 미첼상원원내총무는 이미 지난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지 모른다는 이유를 내세워 개헌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공화당측의 정치적 공세에 수세일 수밖에 없다.【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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