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일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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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늘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한.일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갈 것인지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한다. 그 시사점을 찾기 위해 미시간대의 로버트 액슬로드 교수가 만든 이기적 사회에서 성공하는 법칙을 한국 외교에 적용해 보자. 그의 법칙을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 외교가 성공하기 위한 원칙으로 환원한다면 "첫째, 협력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라(be nice). 둘째, 상대 국가가 배신으로 나오면 바로 응징하라(be punishing). 셋째, 침해된 이익의 정도에 상응해 대응(be forgiving)하라. 넷째,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해(be clear) 신뢰를 형성하라"다. 이런 네 가지 외교원칙에 따라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고려해 보자.

우선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진다면 한국은 협조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아베 정권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치중해 중국과 교섭이 잘 진행되면 한국과의 갈등도 함께 풀릴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아시아 관계에서 한국이 어느 국가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아베 자신이 정서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아베 총리의 감정적 유대를 발전시켜 양국이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포함한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한국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아시아외교 개선의 중요한 정치적 성과로 삼을 것이다. 아베 자신도 이 점을 고려해 10월 22일 중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중과의 정상회담을 앞당겼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베 자신이 그 정치적인 성과를 붕괴시키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즉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다면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전부 잃어버리게 돼 치명적인 정치적 손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역사인식 문제에서는 원칙을 강조하지만 대북 문제 등에서는 실질적인 협력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각자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정책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한 지혜를 함께 모으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즉 대화냐 압박이냐 하는 방법론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북한의 핵실험 저지를 위한 목표에 한.일이 일치한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해야 할 것이다.

넷째, 앞으로 한.일 정상회담은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을 극복해 세계 속에서 한.일 양국의 역할을 모색하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테러.환경 문제 등 많은 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역사인식에 묶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이 좀 더 높은 비전과 목표에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