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40돌맞은 성라자로마을 원장 이경재신부|"신앙이 나환자에 삶의 가치 일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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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성라자로마을이 설립40주년을 맞았다.
경기도의왕시 몰압산 기슭에 있는 성라자로마을은 나환자들의 안식처로 대표적인 종교구제시설의 하나다.
이경재신부는 설립초기부터 원장을 맡아 20년 넘게 이곳에서 봉사해온 산 증인이다.
―성라자로마을에서 봉사하게된 계기는.
▲26세때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 부임한 곳이 안양이었습니다. 나환자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51년 성탄때 천막촌을 찾아 크리스마스미사를 올렸습니다.
그들과 떨어져 있을수 없다고 생각되어 주교님들에게 함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보낸 펀지속에 『하루 속히 저들의 영혼과 육신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부임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구절이 많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젊고 순수했던 것같습니다.
―1년정도 있다 라자로마을을 떠났고 70년에 다시 부임하는데요.
▲폐가 나빠지고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또 이끌어나갈 능력도 없었어요.
70년 미국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시 이곳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학기남대주교등에게 요청했습니다. 『실천없는 융변보다 침묵의 실천자가 되고 싶습니다. 도전하고 돌진하고 싶습니다. 지금 교단에서 힘든 일은 외국인신부들이 더많이 맡고 있는데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라며 간청했지요.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나환자들과의 생활은 신앙심만으로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같습니다.
▲사실 몇년동안은 환자들의 손을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가족처럼 어울리지만.
이 마을안에 다미안신부의 흉상이 있습니다. 그는 하와이군도 몰로카이섬에 들어가 16년동안 나환자들을 돌보았는데 그중 13년은 그 자신이 나환자가 된 상태였고 나환자로 죽였습니다. 선배신부로서 존경합니다. 저에게 힘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나환자가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 기적은 실재하지 않았겠지만 기적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환자들의 마음의 변화에서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지식이나 건강이 뒤떨어진 시달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삶의 가치를 느끼고 신앙생활을 통해 고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분명히 기적입니다.
―나환자들과 생활하고, 그것을 축복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헌신하게한 마음의 지주는 무엇이 었습니까.
▲참으로 이상합니다. 신부가 될때 누구나 신앙의 모토를 하나씩 가집니다.
그때 나는 누가복음에 있는「너의 근심이 변하여 나의 즐거움이 되리라」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 말이 지금 생활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겠지요. 잘 형성된 사람이 아름답다고 할 때 신앙으로 이루어진 삶이 가장 크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기때문에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어떻게 하면 진리대로 살아갈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성라자로마을은 많은 후원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요.
▲국내 후원자가 3만6천명입니다. 한일합섬·선경·고려합섬등의 근로자가 6백여명이나 됩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도와줍니다.
―해외에서는….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데는 많은 사람이 접니다. 해마다 미국·캐나다등의 성당을 찾아다니며 강론하고 성금을 받습니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여러 도시를 다니는데 교포집 어린이 침대에서 잠을 자지요. 일본에는 후원자가 많습니다.
―감격스러웠던일은.
▲나환자가 여권을 받아 해외여행을 하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게된 일이었습니다.
―이제 10대에는 환자가 없어질 정도로 나병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30∼40년은 그들을 더 돌보아야 할것입니다. 그후로는 불우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등으로 바꿔어갈수 있겠지요.
―이번에 아록의 집을 완공하고 40주년이 되는날(6월 2일) 문을 열였습니다. 신부님의 또다른 이름이 알렉산드르이고 아녹산이라고 하여 후원회에서 아녹의 집이란 이름을 붙이도록 강권했다고 하던데요.
▲(하하하)여러가지 감회가 있습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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