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판념적 「민족문학논쟁」 반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격동기가 언제나 그랬듯이 지난 80년대도 우리문학은 비평의 시대였다고 부를만하며, 근대이후 역사적 전환기 때마다 새롭게 제기되었듯이 민족문학론이 이 연대의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20년대의 카프시대와 8·15직후의 논쟁기가 쌓아봤던 과학적 민족문학론의 제3단계에 해당되는 80년대 비평문학은 분단이 고착화된 이후 제기됐어야할 모든 쟁점의 분출이기도 했다.
유신말기 긴급조치 9호 아래서 대학시절의 상당부분을 보내면서 문학수업을 했던 일군의 비평가들이 5·17을 겪으면서 미학적으로 대응할수 있었던 유일한 방안이었던 민중문학론은 80년대 중반부터 보다 엄밀한 과학성을 띠게된다.
채광석에 의해 제기된 민중적 민족문학론은 김명인에 이르러 정교화하면서 70년대의 한계를 시민적 민족문학론으로 규정하고 80년대의 민중주체의 미학적 진로를 제시했다.
김명인 자신의 지적처럼「70년대적 소영웅주의와 80년대적 민중주의를 한몸에 지닐 수밖에 없었던」과도기적 비평의 임무를 떠맡은 그는 앞세대에 대한 가장 가차없는 비판(「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으로 당대가 감당해야할 미학적 전위를 형성했다.
민중을 계도의 대상으로 삼던 전문적 지식인문 학인들이 주도하는 문학활동시대의 종언과 민중계급 자신의 정서에 따른 민중 스스로의 창작 주체시대를 공언한 그는 이후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이론적 성숙을 위해 80년대를 다바쳐온 셈이다.
민중적 민족문학론은 그 창작방법에서는 민중적 리얼리즘이 되며 문예조직 및 운동론에서는 통일전선적 대중문학운동론이어야한다는 (「현단계 문학운동의 방향감각 조정을 위하여」) 김명인의 주장은 이내 민주주의 민족문학론-노동해방민족문학론-창작방법론에서의 현실주의론(조정환등), 민족해방문학론, 주체적문학론 (백진기등)으로부터 이의를 제기받는다. 김명인은 노동해방문학에 대하여는 「노I동문학에서의 전형문제」「먼저 전형에 대해서 고민하자」, 민족해방론에 대해서는 「주체문예 이론의수용과 혁명적 대작의 문제」로 각각 대응하면서90년대의 우리문학적 진로를 여전히 민중적 민족문학과 민중적 리얼리즘으로 방향설정하고 있음을 느끼게한다.
그러나 한 세대를 넘기면서 90년대를 향한 「희망의 문학」을 다시 제기하는 문학 안팎의 사정은 무척 달라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초에 70년대 비평가들을 소시민문학으로 단정했듯이 민중적 민족문학론자들도 그런 낌새는 없는가를 새삼 되묻게 만들 소지가 없지않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지나친 자생성을 강조한 조정환을 비판하면서 거기에는 『일정 정도의 지도성이·관철되고 있다』는 반박이나 전위노동자당 건설문제, 문예대중화운동에서 위로부터의 초보적 영향력의 행사를 위한 전문문학인의 역할 강조등에서 보여주는 논리는 어느새 저자 자신이 지식인문학의 전문성에 편입되고 있음을 느끼게한다.
물론 이런 변모를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싶다. 그것은 민중문학에 대한경시나 현장의 떠남이 아니라 90년대적 한국사회에서 대중화와 통일전선을 이룩할수있는 고도화된 전문성으로서의 민중문학론이 다시 제기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희망의 문학」은 진정코 90년대 민중의 희망이고자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며 저자 스스로의 모든 주장들을 부끄러움없이 털어놓은 80년대의 결산이기도 하다. 『단 한편도 본격적이고 독자적인 작품, 작가론이없다』는 저자의 고백은 80년대 민족문학논쟁의 관념성을 반성하는 대목이다.
민중-노동가-민족이 어째서 다른 논리적 축 위에서 맴돌면서 작품분석과 실천론을 떠나 이론논쟁에 치중했던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김명인은 이 책2, 4부에서 저자 나름대로의 당대적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작업에 열중했음을 느낄 수 있다.
또 3부에서는 당대적 문학론을 근대이후 전시대를 통시적으로 관찰하는 비평적 안목을 엿볼 수있게 만든다. 탁월한 농민문학등의 성과다.
이제 80년대 민족문학의 이정표을 바라보며 90년대의 새로운 김명인을 기대할 차례가 되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